이별의 노래
어렸을 때 외삼촌은 나를 무릎에 앉히고 노래를 가르쳐 주곤 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 들어가기 전에 배운 노래 중에 대중가요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가곡 이별의 노래 가 생각난다.
아리조나 카우보이는 6.25 전쟁 후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 문물에 대한 동경을 경쾌한 리듬에 실어서 히트 쳤다.
'인디언의 북소리가 들려오면 주막집의 아가씨가 그립다'라고 하는 앞뒤가 잘 안 맞는 가사를 시비 걸 수 있을 만큼 어휘력도 감정도 없었던 나는 그저 들리는 대로 통째로 외어서 불렀다. 모르는 말 투성이었지만 어려서는 그게 생활이다.
'말재촉'( 말채찍)이 뭔데 말아드는 지, 달려가는 '영마차'(역마차)는 처음 듣는 짐승인데 ... 똑똑한 아이는 어른 귀찮게 물어봤겠지만 호기심이 부족한 나는 대충 통밥으로 때려잡고 엉뚱하게 이해했다.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 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저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그러나
이별의 노래는 달랐다.
외삼촌이 가사를 설명해 주지도,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어렴풋이 감으로 짐작했고 그 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
'울어예는'(울며가는) 이라는 말을 이별의 노래 이후에 들은 기억이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해하는 뜻은 별 차이 없다. 혹시 어려서 '울어 예다'가 아니고 '울어대다'로 들었더라도 가사의 흐름을 크게 어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 절 모두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로 끝나는 대목이 서운하기는 했다. 어릴 때는 식구와 헤어지기 싫어 밤에 잠도 안 자려고 버티는 판인데, 바람 좀 분다고 다 털고 가야 하는지 아쉬웠다.
이별의 노래가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다른 건,
함축된 언어로 자연을 인간사에 비유하는 '언어 경제학자' 박목월 시인이 작시한 가곡이라는 것 말고도,
가사가 모두 순우리말이라는 점이다. 1절에서 '구만 리', 3절에서 '산촌' 빼고 가사에 한자어나 외래어가 섞이지 않았는데도 할 말을 다 했고 다섯 살짜리도 이해했다.
우리가 지금 일상에서 쓰는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 외국어다. 순우리말은 활용이 점점 줄어들어서 달걀은 계란이 되었고, 닭은 치킨이 되고 있다.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 순우리말을 쓰자는 게 아니다.
언어에는 사용하는 민족의 삶과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온 순우리말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섬세하고도 미묘한 감각적 차이를 가장 적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아무튼 가을이 많이 깊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Qe7SX6ZJ8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별의 노래 1절 / 박목월 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