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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07. 2023

[함평] 학다리 역에서

함평에서 만난 사람들

함평 학교면 : 예전 철도 자리 / 구 학다리 역 급수탑 

전라남도 함평군의 학교 면사무소 근처에 첨성대 모양의 석탑이 서있다. 탑을 돌아보다 작은 안내판을 겨우 발견했다. 지금은 없어진 학교역 또는 학다리역으로 들어오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기 위해 1921년에 지어 올린 급수탑이다. 수증기 힘으로 가는 칙칙폭폭 기차에겐 급수탑이 주유소인 셈이다.  


워낙 견고하고 섬세하게 지어져 태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학교역의 급수탑은 증기기관차가 디젤기관차로 바뀌면서 용도 폐기되고 이제는 문화재가 되었다. 

학교역은 호남선의 복선화·직선화 사업으로 2001년에 조금 떨어진 위치로 이전하면서 이름도 함평역으로 바뀌었다. 학교역의 선로를 걷어낸 자리에는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길섶에 초라한 'KORAIL'  팻말이 여기가 누구 구역인가를 일러준다. 


당시 역의 위치를 옮기면서 '학교역' 이름을 그대로 존속하느냐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낙후된 함평군의 개발을 위해 '학교역'이 '함평역'에 양보한 걸로 전해진다. 형님이 잘 돼야 집안이...  


직선거리로는 1 kM가 안되고 이전한 위치도 아직 학교면 관내이고 하니 아예 '학다리역'으로 소급해서 간판을 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하여간 우리는 지조도 의리도 없이 명칭을 바꿔댄다. 그래도 학교學校 이름이나 도로명에 '학다리'가 남아있는 건 다행이다. 


이 지역의 호남선은 나주 고막원 역에서 함평역을 지나고 무안, 몽탄을 거쳐 목포로 향한다. 호남선 복선화 하는 과정에서 학교역을 폐역 했다는데 지도에서 보면 예전 학교 역 ( A ) 자리가 오히려 직선상에 가깝다.  


학교 역 이전의 배경이 궁금해서  면사무소에 들어갔다. 민원 창구에 가서 용건을 얘기했더니 총무계로 가보라며 건너편 사무실을 가리킨다.  


직원들이 복도를 향하고 앉은(=극장식) 민원실은 뭘 물어보기가 무난하지만, 자기들끼리 마주 보고 앉아있는 사무실에 들어가면 누구에게 말을 붙여야 할지 머뭇거리게 된다. 입구 쪽으로 앉은 직원을 방해하게 되는데 그들이 대개 해맑고 싹싹하긴 해도 큰 도움은 안 된다. 오늘처럼 뜨악한 용건을 제시하면 잠시 난처해하다가 안으로 들어가 무서운 얼굴을 한 고참을 앞세우고 나온다. 


그런 건 철도공사에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식전 댓바람에 뜬금없는 옛날 얘기로 행정력을 소모시키는 노인네를 환영하는 공기관은 없다. 작년 산청 원지에서처럼 다짜고짜  '부면장님'을 찾을 걸 그랬나. 

나주-함평-무안 일대를 지나는 호남선


면사무소를 나와서 '학다리 1인 장터'나 들렀다 가려는데 둘러봐도 안 보인다. 노인 혼자서 운영한다는 재미있는 5일장을 지역의 계간 잡지 '함평 사람들'에서 소개했다. 잡지를 발행한 함평방송(HBC)에 전화했더니 면사무소에서 알 텐데요 한다. 거기 다시 들어갈 기분이 아니어서 그 사람들 바쁜 것 같다고 둘러댔더니 의아해한다. 함평 방송의 최 대표가  가르쳐 준 다리 건너 복지회관 앞에 가니 좌판은 있는데 주인이 안 보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말도 안 되는 비유를 중얼거리면 돌아섰다.  



구 학교 역 ( 출처: 함평역 보관자료 역사驛史 ) / 현 함평역


다음날 함평역으로 역장을 찾아갔다. 철도역의 업무 특성상 길게는 시간을 못 낸다면서도 '고객님'을 기꺼이 사무실로 안내한다.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법인화하면서 '손님'이 '고객님'으로 되었다며 역장이 사람 좋게 웃는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소속된 조직의 성격에 따라 자동으로 '세팅' 되지는 않을 터이다.  낯선 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타고난 성품(자연)과 교양(문화)이 드러난다. 


얼마 전에 함평 군청 앞 좁은 골목길을 운전하고 가다가  백차(=경찰차)와 마주쳤다. 젊은 경찰관이 창문을 내리고 웃으면서 '모르고  그러신 거죠?' 하더니 간다. 내가 일방통행로를 역행하고 있었다.


' 오래전 일이라 잘은 모르지만, 구舊 학교역 주변에 민가도 많고 해서 (복선화에 소요되는) 추가 부지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요? ' 학교 역을 이전한 사정에 대한 함평역장의 사견이다. '나주 영산포역을 나주역과 통합할 때도 그랬거든요. 복선화에 공간이 많이 필요해서 지금의 나주역 자리로 이설 했지요.' 


이름은 함평역이지만 읍내에서 꽤(라고 해봐야 군청에서 7-8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이용들을 많이 하겠냐는 조로 물으니, 승차권 판매를 중단한 인근의 무안역이나 몽탄역 주변에서 일부러 함평역으로 와서 타는 승객들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종이 열차표를 발권하고 있고 또 주차장도 널찍하기 때문이다. 


일어서려는데 역장이 겉표지에 '驛史'라고 쓰인 두꺼운 검은색 바인더를 들고 와서 펼친다. 역사驛史 - 역의 역사歷史다. 


1913. 5.15.  광주 목포 구간에서 보통역으로 학교역 영업을 개시했다는 함평역의 아득한 궤적이 손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국민학교 때 선생님이나 면서기가 공들여 쓰던 바른 글씨체가 반갑다.  1918. 1.1. 간이 급수탑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아마 급수탑을 임시로 지었다가 1921년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석조 급수탑으로 개축하지 않았나 추정한다. 역사驛史상 현 역장은 46 대代.  선물 같은 기록이다. 역에 직접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학교면이 학學구적인 연고가 있는 고장인가 했더니 학다리(鶴橋)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얕은 상상력으로 근처에 다리가 있냐고 행인에게 물으니 '글씨(글쎄)요' 한다. 넓은 벌판에 날아온 학들이 마치 교각을 이루듯 장관을 펼쳐 ‘학다리’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학다리 지명이 학교로 바뀌었으리라. 우리나라에 '학'이 들어간 지명은 학鶴이 많이 서식하던 곳일 확률이 높다. 한글 전용을 하기 위해서는 고유어를 많이 섞어 쓰든지 아니면 국 한문 병용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실감한다.


일제 때 학교면 일대는 수탈한 물자들을 영산강의 물길을 통해 목포로 실어 나르는 교통로 역할을 하며 번성했다고 한다. 중천포 근처에 당시 일본인 지주가 살던 주택과 곡물 창고를 복원해 놓았다. 하천 교통이 철도로 대체되면서 포구들은 폐쇄되었고 학교면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 되었다.  


            

학교면 거리    /    복원한 일본인 주택,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 기법으로 지은 건물

              



                              

역장으로부터 '고객님' 소리 들은 값도 하고 종이 기차표 체험도 할 겸 함평역에서 새벽 열차를 타고 가까운 몽탄역을 왕복해 보았다. 마치 비행기 보딩 패스처럼 역무원이 기차표에 색연필을 칠해가며 중요 사항을 확인해 준다. 창구에서 직접 기차표를 끊어 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함평역은 나비 축제 때 말고는 KTX가 서지 않지만 환승을 위해 KTX 승차권을 발권하고 있다. 몽탄역에는 2021년부터 승차권 발매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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