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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13. 2023

[함평] 삼구마을 사람들의 인문학

함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문화마을' 표지판이 붙은 동네가 나온다. 정부에서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려고 만든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함평군의 나산면을 지나다 우연히 진정한 문화마을을 발견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허벌나게' 향토 문화적으로 이방인을 반긴다. 


삼구마을 사람들은 학, 사상 그리고 사사로운 대화까지 동네 담벼락을 통해 통신하고 교육하고 공유한다. 벽화를 그린 동네는 더러 봤지만 여기처럼 마을의 골목길을 인문학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처음이다


문화의 정의는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다. 이 마을에서 '사회 구성원'은 동네 사람뿐 아니라 나 같은 나그네에게까지 확장된다.


함평의 삼구마을은  공식적인 지정 여부를 떠나서 충분히 문화마을이다. 




마을을 벽 글씨로 꾸미게 된 내력도 당연히 '벽'에 기록했다. 


'2022 행복 함평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조성한 시가 흐르는 동네 한 바퀴 벽화마을 사업은 60,70년대 새마을 사업 쌓은 케케한 시멘트 블럭을 아짐 아재들이 모두 나와 흰색 페인트로 캔버스를 만들고 출향 작가들과 향토 작가들이 합작으로 수를 놓으니 멋진 야외 갤러리가 되었다' 



시詩와 서書에 능한 작가는 벽에 낙관을 찍어 작품을 완성했다.



'그렇고롬 혀서 나가 새로 스물여덟 자를 거시기 했응께 느그들은 수월허니 거시기 혀부러갖고' 전라도 판 훈민정음을 여기 담벽에다 반포했다. 




아무렴요. 꽃 같은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열매가 맺었지라. 



부부의 대화는 담을 넘어가지 않는다는데 이장 부부의 정겨운 실랑이가 '녹취'되어 담벼락에 기사화되었다. 


'어메 이 사람아 / 이렇구럼 더운디 / 어쭈구럼 고추를 딴당가 / 쪼까 시원해 지면 가세'


'환장허것네 /고추는 삘게 갖고 있는디 /언제 다 딸라고 / 그런 소리 한단가 '


조선 시대 남구만의 시조가 떠오른다.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마을 길에서 좀 떨어진 집들은 친절하게도 글자 크기를 키웠다.



벽에 게시한 5가지 폰트.



농가월령가 중 5,6 월령 / 거북이 구龜자 삼구마을의 유래. 지금은 쓰기 쉽게 아홉 구九 자를 써 삼구동三九洞이 되었다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 인륜은 유교의 기본 윤리 사상을 넘어 전통시대에 사회를 운영하는 과학이었다.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를 제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강조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킨다. 


삼강오륜을 말로 하면 잔소리가 되지만 담에 써 놓으면 오고 가며 외면할 수가 없다. 강력한 교육 매체다. 




산업화로 인해 현대사회는 인간성이 점점 퇴색하고 있다.  경쟁과 효율의 가치가 우선하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타인과의 소통에 소홀해진다. 


인간성 회복은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농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지향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인간성 회복 운동을 우리 사회의 원형인 농촌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농촌이 더 도시화되기 전에. 


싸묵싸묵 : 조금씩 흔들리며 천천히 나아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전라 지방의  방언 [네이버 사전] 


수미首尾가 상관하는 삼구마을 사람들의 인사말은 완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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