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위로 말하면 우리말 오백 년도 못 간다
상임위에서 막말과 고성이 이루어졌습니다.
채용 등 인사관리가 부정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그 부분을 들여다 보라는 지시가 이뤄졌다.
다만 단순 도박 혐의에 대해 약식기소가 이뤄졌는데,
보다 젊어진 편곡으로 새로 녹음이 이뤄졌는데 누구나 음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뤄지다'는 이루다 동사의 수동태로서 사전엔 '어떤 대상에 의하여 일정한 상태나 결과가 생기거나 만들어지다. 뜻한 대로 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꿈( 소원)이 이뤄지다' , '계획대로 이뤄지다' 든 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목적하는 결과가 실현되는 맥락에 사용해야 맞고 자연스럽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언론 기사들엔 수동태를 궁색하게 가져다 쓴 기미가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목적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고성이나 범죄행위에까지, 수동태 하나 만들려고 장황하게 네댓 음절 씩 길게 붙여가며 엉터리 문장을 만들었다. 능동태로 바꿔보면, '막말과 고성을 이루다', '인사관리를 부정적으로 이루다'라는 말은 맞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여기서 내가 고루하게 문법을 따지려고 하는 게 아니다.
'막말과 고성을 질렀다', '들여다보라는 지시를 했다'처럼 그냥 능동형으로 쓰면 될 것을, 멀쩡한 말을 괜스레 수동태로 비틀어 붙이니 웃기는 말이 되는 거다. 아무리 보아도 이 문장들에서 수동태가 주는 부가가치를 찾을 수가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동사를 무리하게 압축하는 잘못된 습관에 있다.
'인사를 부정적으로 관리했다' 같이 동사를 풀어쓰면 자연스러울 문장이다. '인사관리'라는 동명사로 억지로 뭉쳐놓고 거기에 다시 하다를 붙여 '인사관리를 부정적으로 했다'로 썼다. 그러고 보니 '했다'가 앞의 '인사관리'와 비교해 좀 싱겁고 균형이 안 맞는 것 같았던 모양이다. 고작 생각해 낸 게, '이루어졌다'의 줄줄이 다섯 음절 수동태를 갖다 붙였다.
'오르다'를 한자어 '상승上升하다'로 바꿔 말하면서 벌어지는 장면을 보자.
1. '오르다' 동사를 '상승'이라는 명사 이자 동사에 억지로 가두어 놓고 거기에 다시 '하다' 어미를 붙여 문장을 마무리한다.
2. '오르다'는 '상上' 또는 '승升' 한 글자만으로도 그 뜻이 충분한데 두 음절은 되어야 안심이 되는 한자 어휘의 '낭비벽' 때문에 이중으로 말이 길어진다.
3. 어떤 때는 '하다'로 만 끝내기 허전해서 수동태로 바꾸어서 (상승이) 진행되다, 시행되다, 이루어지다, 이어지다 따위의 동사를 의미 없이 갖다 붙이기도 한다.
4. 반면 '오르다'로부터 파생되는 올라가다, 기어오르다, 뛰어오르다, 치밀어 오르다 등의 직관적인 표현들은 포기해야 한다.
5. '오르다'와 비교해서 '상승하다'를 발음할 때의 부자연스러운 어감은 별개로 한다.
오르다 하면 깨끗하게 전달되는 말을 한자어를 동원하는 바람에 우리와 우리말이 실속 없이 고생만 한다.
'밥을 먹었다' 하면 될 것을 '식사를 했다( 밥 먹는 것을 했다 )'로, '밖에 나갔다'를 '외출했다( 밖에 나가는 것을 했다)'로, '책을 읽다'를 '독서하다 (책 읽는 것을 하다)'로 바꾸어 놓고 편안해한다. '대통령이 모 장관과 긴밀히 얘기하더라'라고 쓰면 되지 뭐 하러 '대통령이 모 장관과 긴밀히 협의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라고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장관 데리고 연극하냐?
우리말의 여러 동사를 한자어 명사로 (괜히) 압축해 놓고 획일적인 조동사로 마무리하는 엉뚱한 바보짓을 되풀이하고 있다. 걱정하는 이는 없고 '이뤄지다'가 맞는지 '이루어지다'가 맞는지나 따지고 앉아있다.
주어나 목적어를 자주 생략하는 우리말은 그 대신 동사가 발달했다고 한다. 동사의 어미가 여러 갈래로 변화하면서 (예: 가니, 가자, 가지 마, 가라)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는 구조는 한문이나 유럽어엔 없는 우리말의 특징이다. 그런 동사를 한자어에 꾸겨 넣고 하다, 되다 등 몇 가지 동사 어미로 줄여 버릇하니까 서술부가 허약하게 느껴져 이상한 표현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동사를 풀어주자
한국어의 핵심은 동사라고 한다. 주어, 목적어 다 생략하고 동사만 가지고도 얘기할 수 있다. 우리말 동사는 어미가 붙어 변화한다. 한자는 글자의 위치와 문맥에 따라 문장 성분이 바뀔 뿐 글자는 변화하지 않는다. '감동感動'은 '감동'도 되고 '감동받다', '감동시키다'의 뜻도 있다. 이 한자어 동명사가 한국어 체계로 들어오면 '하다' 동사 어미가 붙어야지 제구실을 한다.
이제는 우리가 동사를 한자어의 틀에서 풀고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러면 스스로 멋있고 자연스러운 우리 어휘를 되찾아, 우리말 성분의 주인공답게 말을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주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했던 서술부가 튼튼하고 화려해지면서 옛날의 경쟁력을 회복한다.
문장의 앞뒤를 맞추는 게 힘이 안 들고 말하는 이들도 쉽게 술술 소통하니 덩달아 사회의 갈등도 줄어든다.
그리고 문화 의존국의 멍에를 벗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리스펙 한다' 따위의 쓰레기 말이 없어진다.
불편하면 말하기 싫어진다.
하기 싫은 말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