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위로 말하면 우리말 오백 년도 못 간다
중복되고 거창한 말
내려가다는 뜻의 '하강下降 '에서 하下는 중복된 의미다. 아래로 올라가는 건 없다.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1+1 식으로 끼워 파는 단어를 사다 쓰고 있다. '집'을 '자택'이라고 침 튀기는 두 자의 한자어로 애써 바꿔봐야 뜻은 같다. 자기 집이지 남의 집인가? 두 음절 한자어마저도 싱거워서인지 넉 자로 늘려 쓰는 경우도 있다. 검사는 그 위상에 맞추어 네 자로 '현직 검사'.
'휴대폰에 음성인식 장치를 탑재했다'라는 말은 굴삭기 타고 동네 편의점에 가는 식이다. 함선이나 비행기에 장비나 인원을 장착하거나 싣는 것이 '탑재'다. 추측건대 휴대전화에 음성인식 기능을 '넣었다'라는 홍보문구를 만들다 보니 좀 싸 보이고 싱거워서, 누가 어쩌다 이렇게 묵직한 단어를 찾아 궁색하게 써 본 걸 여러 사람이 따라 하게 된 것 같다. 한심스러운 생각에 묵직한 욕지거리가 내 입에 '탑재'된다.
'케이크를 자르겠습니다.'를 '케이크 절단이 있겠습니다'라고 꾸며서 말한다. 우선 절切과 단斷의 동의어가 되풀이되었다. 게다가 불필요하게 '있다'에 미래, 의지의 어미를 가져다 붙이면서 말이 길어지고 발음도 어색해졌다. 행사를 거창하게 보이려는 속물적인 목적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정 그러면 '이제 케이크를 자를 차례입니다' 해도 된다. 어쨌든 케이크 커팅보다는 낫지만서도.
한자어 단어가 대개 두 음절 단위로 짝을 지어 안정되고 함축적으로 보이는 데 비해, 고유어는 전달되다가 부서져 흘릴 듯 흐물흐물하고 실없어 보여 그랬는지 문어에서는 사용을 피해왔다.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자어는 입에 잘 안 붙으면서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운 반면 고유어는 입에 넣으면 살살 녹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래 써온 우리말은 강가의 자갈처럼 둥글둥글하고 입에서 술술 나온다. 우리 고유어의 의사 전달 능력이 못 미더워서, 발음하기 거북하고 뜻이 과장된 한자어를 차용하면서 우리가 언어생활에서 지불하는 대가는 적지 않다. 대개 고유어에 비해 한자어 발음이 거칠고 파열음이 많다, 침도 튀긴다. 예) 아버지 : 부친
헷갈리는 말
결재決裁는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상관이 승인하는 것을 말하는데 '결제'와 혼동하여 표기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결제決濟는 상거래에서 돈을 지불하는 것을 뜻한다. 제설製雪( 인공적으로 눈을 만듦)과 제설除雪( 쌓인 눈을 치움 ), 연패連敗 (계속 짐)와 연패連霸 (계속 이김)도 같은 경우다. 피해자-피의자, 지향-지양처럼 발음은 비슷한데 의미는 서로 대립되는 낱말들을 불편을 무릅쓰고 굳이 계속 사용하는 것은 마치 함정 시험 문제를 내놓고 틀리기를 기다리는 것에 비유할 수밖에 없다.
군더더기 너절한 말
위 왼쪽은 요즘 시내버스에서 자주 듣는 방송인데 요점은 '마스크 안 쓰면 버스에 못 타고 버스 안에서 말하지 말라'는 안내 내지 경고문이다. 이렇게 100자 씩이나 되는 장황하고 정신없이 긴 문장을 만들어 방송하고 있는데 처음 듣는 사람은 한참 들어야 무얼 얘기하려는 건지 알 수 있다. 오른쪽 문안처럼 스무자 정도로 줄여서 말하면('착용'은 제외하고) 요점을 더 간결하게 전할 수 있다. 국토부 방침, 미착용, 탑승, 승차, 거부, 자제, 모두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런 표현들이다. 공적인 안내문의 생명은 정중함이 아니고 전달력이다.
위 사진에 나오는 경고문들은 왼쪽 사진의 오른쪽 끝 '금연구역'처럼 그냥 '인라인 스케이트 금지' 그리고 '추락위험 올라서지 말 것'이라고 쓰는 게 문장도 간결해지고 전달력이 좋아진다. 인라인 스케이트 경고문은 어법도 틀렸는데 제대로 쓰려면 '부모님께서는 본 회관에서 아이들의 인라인 스케이트 사용을 금지시켜주시기 바랍니다'로 길게 늘어진다. 읽다가 요점은 파묻히고 길을 잃는다.'-이오니', '-바랍니다' 등 불필요를 넘어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되는 높임말 어미를 생략하는 게 온당하다.
그밖에도 우리가 습관적으로 쓰지만 생략해도 상관이 없거나 오히려 전달이 잘 되는 말 ( 췌사) 들이 꽤 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 '- 경우에는' , '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위는 별 의미 없이 문장 길이의 반을 차지하기도 한다.
억지 말 만들기
'리프트 하행 미운행' 어느 유원지에서 내려가는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다. 한자어 앞에 접두사 비非, 불不, 미未 등을 붙여 부정의 뜻을 표현한다. 미성년未成年이나, 비무장非武裝처럼 이미 하나의 독립된 단어로 굳어진 건 무방하지만 미未 등의 접두어를 써 (형태소의 기능으로) '미부여'나 '비장애인'처럼 생소한 부정어를 만들어 내는 건 자제해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보는 '미시행', '미운영' 등의 표현은 억지스러울뿐더러 언 듯 이해도 안 간다.
문제의 핵심은 말의 과소비
사치품을 소비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과시하는 것처럼, 자기의 지적 수준을 내보이기 위하여 과도한 장식을 하다 보니 (수식하고는 다르다.) 말이 거추장스럽고 천박해졌다.
1. 불필요하게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한자어를 갖다 붙이거나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되는 한자어를 고집하고 있다. 말하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술술' 표현하는 데 걸리적거리게 된다. 또한 파생되는 표현을 어법에 맞지 않게 고안해서 전달이 부드럽지 않고 우리의 낱말 만드는 능력을 퇴화시켜서 '댓글러' 같은 쓰레기 말이 생기고 있다.
2. 군더더기가 주렁주렁 붙은 말을 함으로써 명확하고 간결하게 뜻을 나타내는 언어의 사명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말의 낭비일 뿐 아니라 정작 말하려는 초점까지 방해한다. 말은 산만해지고 반비례하여 의미 전달이 방해받으면서 말이 불편해진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표현들이 아직 사적 공간으로 침투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오고 가는 문어체 대화에 비해 가정에서 쓰는 언어엔 아직 간명하고 순수한 우리 고유어가 많다. 집에서 식구들끼리는 '돈사'보다는 '돼지우리'라는 말을 더 쓸 것으로 믿고 싶은데 '달걀'이라는 아름다운 말은 '계란'에 밀리고 있는 듯하다. 아직 안 늦었다.
(원인을 제공한) 공기관과 언론이 앞장서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
어색하고 거창한 표현을 자제하고,
혼동되는 단어를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고,
공적인 안내문을 평어체로 간단하게 ( '금지', '하지 말 것' ) 바꾸어 써서, 그게 무례한 게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어야 한다.
장식이 많으면 거동이 불편하듯이 말도 그렇다.
불편하면 말하기 싫어진다.
하기 싫은 말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