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면 우리말 없어진다.
네덜란드 주재원 당시 2년 차가 돼서야 결혼도 하고 본사에서 직원을 한 명 충원받았다. 그전까지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우리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가끔 하는 한국과의 전화통화 외에는 하루 종일 거래선과 현지인 동료들과 외국어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내게 외국어는 말이 아니고 그냥 신호였다. 오래 동안 말을 안 하니 이상해 졌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을 때, 퇴근해서 밥을 해 먹으면서 아무 때나 중얼중얼했다.
처음엔 실수로 한 두 마디 하다가, 그다음 단계엔 구句에서 절節의 수준으로 발전해서 중얼중얼 한 문장을 이루었다.
이제 혼잣말이 여러 문장을 이어가며 복문複文, 중문重文으로 발전하더니, 급기야 대화체로 바뀌면서 상대방의 역할까지 하는 일인극이 연출되었다.
마지막 단계는 욕이었다. 집에서나 길거리에서 혼잣말로 쌍욕을 한다. (외국에서 이거 하나는 편하다.) 사람이 미치는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본능은 누구나 타고나는 능력이자 욕구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배워서 완성되는 능력이다. 동시에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따라온다. 말하기 또한 능력과 욕구 양면을 충족하는 일종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능을 억제하면 문제가 생긴다. 글을 못 쓰게 한다고 ( 브런치 작가 제외하고)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말을 못 하게 되면 이런 금단현상이 올 수 있다.
내용의 가치가 다를 수는 있어도, 사람에게는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있다. 말하기 훈련은 여러 사람을 상대하거나 복잡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전문적 환경에서 그 기본 능력이 축나지 않고 온전히 발휘되도록 요령을 가르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운 능력이 손을 타면 말이 꼬인다. 말을 잘해보려고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표현이 단순해지고 , 주부와 서술부도 안 들어맞고 문법도 안 맞는 이상한 말이 튀어나온다. 특히 방송에서 그렇다.
너무 맛있어요, 정말요 진짜요 , 아이 너무 좋아요, 아 진짜 정말요, 아 너무 좋아요, 너무 맛있어요 , 너무 좋아요, 아 진짜 정말요, 너무 좋아요
모 라디오 방송
몇 달 전 아침에 우연히 라디오를 틀었더니 20-30 대 젊은 진행자와 초대 손님이 대담을 하고 있었다.
참신하고 시대를 앞서 간다고 생각되는 젊은 방송인 둘이서 어떤 음식을 먹은 소박한 체험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좋다는 표현을 강조하려고 너무, 진짜, 정말 세 개의 부사를 교대로 되풀이해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없고 기가 막혔다.
나중에 그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다시 듣기를 해보았다. 약 10분 동안의 두 사람 대화에 '너무'가 18번 , '진짜'가 11번 나오는데 어느 순간엔 너무-진짜-너무를 연발하기도 했다. 좋다고 표현하는데 정도나 한계를 넘어선 상태를 수식하는 부정적 부사인 '너무'와, 진위를 가리는 부사인 '진짜' 밖에 쓸 말이 없을 정도로 우리말이 빈약한 걸까. 그리고 꼭 부사를 안 쓰더라도 문장이나 비유를 통해 강조할 수 도 있다.
지금 예를 든 방송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들까지도 그대로 따라 한다. 너무 고맙다, 진짜 멋있다, 둘 다 긍정문에 쓸 수는 있지만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이렇게 문장마다 집어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러다가 강조 부사는 너무로 통일되어 (일부) 미국 사람들처럼 말끝마다 f***you 집어넣듯이 할까 무섭다. ( 단어가 길다고 못 참고 중간에 집어넣는 자도 보았다. absof***youlutely... )
부사는 동사나 형용사의 뜻을 분명하게 해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부사를 적절히 활용하면 내용을 강조하는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동사의 동작이나 형용사의 상태 및 성질의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로 정도 부사가 있다. 정도 부사 중에 보통 이상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로 ‘꽤’, ‘퍽’, ‘썩’, ‘참’, ‘매우’, ‘무척’, ‘되게’, ‘몹시’, ‘아주’, ‘훨씬’, ‘무지’, ‘엄청’, ‘한층’, ‘한결’, ‘워낙’, ‘정말’, ‘진짜’, ‘너무’, ‘대단히’, ‘굉장히’, ‘상당히’ 등의 부사가 있다. 요즘 언중들이 보통 이상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로 ‘너무’라는 부사만을 주로 사용하지만 ‘너무’ 이외에도 이렇게 다양한 정도 부사들이 있다. 이밖에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정도 부사로 ‘좀’, ‘조금’, ‘제법’, ‘거의’ 등의 부사가 있고, 어느 수준에 미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정도 부사로는 ‘겨우’, ‘고작’, ‘기껏해야’ 등의 부사가 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7281050742486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개, 대박, ㅈㄴ같이 욕 비스름한, 막가는 부사가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우리말에 몹시, 매우, 같은 좋은 강조 꾸밈말들을 놔두고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얼까. 세상은 더 복잡해지는데 왜 표현은 밋밋해질까?
이에 비해 테레비의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그램에서 듣는 촌로의 이야기는 '말'이다. 긴 이야기를 물 흐르듯 천연덕스럽게 하시는데 문법에 신기하리만치 맞으며 알아듣기도 쉽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양반이 왔는지 몰라. 이사와 가지고 총각이라 그러길래 형제도 많고 부모도 모시는 참한 아가씨 있다고 하니까 막 방방 뛰는 거야 안 간다고. 그때 갔더라면 좀 좋아? 내 말 들었으면...
KBS 인간극장
위에 인용한 구절은 작년 11월 KBS 인간극장에서 방송한 80대 어느 시골 할머니의 말이다. 전혀 무리 없이 적절한 표현을 섞어가며 할머니가 할 말 다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와 인간극장 할머니 중에 누구 말이 더 세련되었을까.
요즘 젊은이들이 질색하는 게 촌스러움이다. 그들이 자기네들 하는 말이 촌스럽다는 걸 아는 순간 이 문제는 사라진다. 우리말의 복원이 절실하다.
아니면 말하기가 불편해진다
불편하면 말하기 싫어진다.
하기 싫은 말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