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일무八佾舞
제례(종묘, 문묘제례)시에 가로와 세로로 각각 8줄씩 모두 64명이 추는 의식무용을 팔일무라 한다.
중국 제도에 따르면 천자(天子)는 8일무를, 제후(諸侯)는 6일무를, 대부(大夫)는 4일무를 추었다고 한다. 조선 왕조는 종묘에서 6일무를 썼지만 현재는 8일무 춤을 춘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일무 (국악정보, 2010. 7., 국립국악원, 전라북도)
기원전 500년 경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신문기사 '팔일무가 뭐길래' 제하의 기사 한 토막을 상상합니다. "계季씨 가문의 대변인은 정기 브리핑에서 논란이 된 팔일무는 가족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면서 순수한 문화 활동에 대한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는 철학계의 태산북두 공자가 연일 '도를 넘는 천자 놀음에 민생은 뒷전' 등 강한 어조로 계손 씨를 비롯한 삼 대 가문을 맹비난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논평이라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법도 상 황제인 천자 급에서나 올리는 8일무 제례를 감히 일개 신하 신분인 계손씨가 자기 집 마당에서 치룬 것에 대해 공자가 쓴소리를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문답-일반화방식이 아닌 묻지도 않았는데 -실명으로 콕 찍어 화법으로 질타합니다. 그렇다면 공자님이 남의 집 제사 지내는데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이유가 뭘까요,그것도 당시 세도가한테.
더욱이 계씨 측으로서는 남이사 전봇대로 이를 쑤시던 ( 근데 이러면 걸립니다, 삼 년 이하의...) 하고 일축하거나 또는 '문화예술이 어떻게 정치적이며 옳고 그를 수 있냐' 라고 역공에 나설 수도 있거든요. 연전에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항소심에서 형량을 늘려 선고한 판결문의 논거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지도층의 분수에 넘치는 호화 파티가 못 봐줄 지경이면 평소와 같이 점잖게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일갈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었습니다.
논어 이인里仁편 4장에서 ‘유인자 능호인 능오인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 함부로 사람 판단하지 말 것이며, 그리고 10장에서 다시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지 의지여비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하여 義之與比’ – 이것만 옳고 저건 절대 안 된다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라며 주의를 주신 게 얼마 안 되었는데, 정작 당신은 이렇게 대놓고 극혐하는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마도 당시 노나라 삼대 가문의 튀는 행태를 쇠락한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엄중하게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족벌의 패륜적인 참칭僭稱 (분수에 넘치게 스스로를 임금이라 이름)을 학자적 양심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지 아니면 공자가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포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렇게 상징적인 제례 절차를 두고 정파 간에 대립하는 사례는 역사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이유는 상제(冠婚)喪祭 의식이 권위와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의 하나로 이용된 사회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분에 따라 봉사奉祀 하는 범위 복식 기간 등을 차등하는 마당에 위정자들로서는 ( 그들이 일용하는 권력을 포장하고 있는 ) 신분의 값에 종속되는 제사 의식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우리 편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반대파의 허세에는 양보 없는 한 판을 벌입니다. 왕이 죽은 마당에 생뚱맞게 계모가 상복을 몇 년 동안 입을지를 가지고 당파 간에 쌈박질한 조선시대 예송논쟁도 같은 '꽈'입니다. 멀리 갈 것 없네요. 바로 몇 달 전 이 나라에서도 두 편 동시 상영하더군요 '삼일장이면 돼쟎어 vs 오일장은 해야지' / ' 대전으로 갈까요, 사당동으로 갈까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신 부자 붕우 등 각 위상에 충실한 행동거지를 사회 규범의 기본으로 삼았고 이 개념이 신분제 사회를 지탱해 줍니다. 따라서 규범에서 돌출하는 행동을 ( 형사 피해자가 없더라도 ) 사회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엄격하게 견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지요.
우리는 누가 분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아니꼽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 밖에 내면 엄청난 모욕이 되지요. 당사자의 능력이나 신분을 아래로 보는 거라 자존심에도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아니꼽다 와 메스껍다의 두 형용사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그만큼 우리의 독특한 정서인 셈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팔일무를 둘러싼 쟁론을 '헐' 하면서도 동일한 사회 문화의 틀에서 무리 없이 수긍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이런 얼기설기 - 관계 주의가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진실을 불편하게 여기는 세대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쩌면 나와 전체의 균형 잡힌 구도를 편안해 하는 고맥락高脈絡사회 가 좀 다듬으면 한 단계 진화한 미래형 사회 모델일 수도 있다는 요행심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