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예약을 잡은 여행지 숙소는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곳이었다.
커피 포트가 있으니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리라. 드립백을 챙겼다. 물을 끓일 수 있으니 밤참으로 컵라면을 먹을 수 있겠구나. 관리동 옆 매점에서 컵라면을 종류별로 샀다. 냉장고가 있으니 아이스크림도 샀다. 물놀이 후 출출한 아이들을 위해 컵에 든 콘프라이트와 우유를 두 개씩 샀다.
방에는 젓가락이 없었다.
그건 몰랐다.
밤이 되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얼마나 난감할 뻔했는지...
젓가락을 챙겨 들고 숙소에 갔다. 왜 그때 숟가락 생각은 안 났을까.
콘프라이트에 우유를 부었다. 우유통을 이로 물어뜯었다. 내가 순간 원시인 같았다. 붙어있는 빨대를 꺼내 구멍을 내고 쭉 짰다. 콸콸, 콘프라이트 컵으로 하얀 우유가 쏟아져 나왔다. 순간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숟가락 있어?”
“...”
아뿔싸. 숟가락이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둘 중 하나만 우유를 부었다.
“젓가락 줄까, 빨대 줄까?”
딸아이는 우유에 말은 시리얼을 마셨다. 빨대도 젓가락도 굳이 필요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다. 그 정도 융통성은 있는 나이다. 마지막에 컵에 남은 걸쭉한 시리얼 건더기 몇 개만 빨대의 도움을 받아 입 속으로 넣었다.
아들은 시리얼을 손으로 집어먹고 우유는 따로 먹었다. ‘따로국밥’ 대신, ‘따로 시리얼’을 새로이 창조하는 순간이었다.
숟가락 없이 우유와 시리얼을 먹는 아이들이 그렇게 장할 수 없었다.
없어서 못 먹지. 있는데 못 먹을 리가 없다. 그래도 늘 옆에 있던 익숙한 물건들이 없으니, 새삼 그것들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