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옥신각신

by 눈항아리

남편의 야습.


그는 캄캄한 어둠을 틈타 낫을 들고,

무화과나무 아래 초록의 정원에 발을 들였다.

모기한테 뜯기며 왜 야밤에 그러는지.

얼른 뒤쫓아가 제발 초록 풀을 베지 말아 달라 간청했다.

그는 약속했다. 바랭이 풀만 뽑겠다는 것이었다.


믿었건만.


다음날 마주한

초록 화단은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바랭이 풀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심은 화초 몇을 제외하고는 죄다 뽑아놨다.

휑한 화단에는

잘린 부추, 무화과 묘목 하나, 바질 몇 개, 설악초 몇 개가 남았다.


심술꾸러기인가?


화단가에 파릇하게 올라오던 애플민트는 낫으로 짜리 몽땅 잘라놨다.

초록 잎은 하나도 안 보이고 빳빳한 나무 같은 줄기만 남았다.

남긴 것인지 낫으로 베다 못 베고 만 것인지.

난장판이 된 화단을 보며 마음이 상했다.

내 예쁜 초록 정원이 사라졌다.


더운 콧구멍 두 개에서 열불이 뿜어져 나왔다.


“무슨 일 있었어? 복이가 또 오면서 뭐라고 했어?”

중학생 아들놈은 왜 들먹이는 것인지.

나는 당신 때문에 화가 났다고.

“나 기분 안 좋아. 자기 때문에.”

분명히 표현했건만, 자신은 아무런 잘못을 안 했다 생각한다.

자신의 소신대로 풀을 뽑은 것뿐이다.

더운 낮시간을 피해 야밤에라도 마당에 나가야 할 정도로

그의 눈에 마당이 지저분해 보였던 것이 분명하다.

분명 손을 걷어붙였으니 어디든 자르고 뽑고 할 것이 뻔하다.

무화과나무 아래 초록 풀밭은 못 지켜냈지만

내 작은 민트 밭과 국화밭, 세이지밭을 지켜야 한다.

키가 더 자라 조금 누울 기미가 보이면

또 남편의 낫이 무자비한 칼날을 들이댈지 모른다.


며칠 더 보고 즐기면 좋을 텐데.


씨근덕거리며 나의 무기를 들었다.

무지막지한 기다란 날을 가진

정원가위를 들고 아침의 무더위 속으로 나갔다.

양손에 가위 손잡이 하나씩을 쥐고

어깨너비로 벌렸던 손을 중간으로 힘껏 오므린다.

팔뚝살에 힘을 주며 싹둑싹둑 풀머리를 자른다.

땀이 뚝뚝 떨어져 흐른다.


날씨야 왜 안 시원해지냐.

풀아 왜 계속 자라는 거냐.

더위에도 가뭄에도 광합성을 열심히 한 초록이들은 키가 쑥쑥 자란다.

그래, 초록이들은 금방 자란다.

얼른 자라라.

바질보다 설악초보다 더 빨리 자라라.


괜히 화단을 지키고 선 풀에게 화풀이를 했다.

정원 가위를 들고 바질 순을 쳤다.

키를 낮춰 과감하게 잘랐다.

설악초도 줄기 하나를 싹둑 잘랐다.

잘려나간 단면에서 하얀 진액이 뿜어져 나온다.


괜히 잘랐나?


가만히 자른 줄기를 보다 설악초 하얀 꽃잎을 살폈다.

가장 위쪽 하얀 잎 위로 작고 하얀 꽃이 피었다.

어머나! 내 꽃!

미래에 자라날 초록 풀들과 키높이를 맞춰주려고 한 거다.

순 치기를 겸해 잘라주려고 한 거다.

절대 아프게 하려던 건 아니다.

부러 거짓 마음을 덧씌우며

하얀 꽃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다.

처음 보는 작고 하얀 꽃에게 마음을 줘버렸다.


미안하게도 내가 외면한 풀꽃에게 위안을 얻다니.


남편은 밤을 틈타 또 나갔다.

보도블록 잡초를 없앤다고

이번에는 작은 무기 하나를 들고 갔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그러나 한 가지는 같다.

정원을 지키는 것.

그 정원의 의미가 닮아가는 날까지

우리는 매번 옥신각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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