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목욕의자를 닦으며

by 눈항아리

화장실 청소하고 하루 만에 울 줄은 몰랐다.

몸이 묵직해서 금방 눕고 싶은 날이었다.

‘그래도 세면대 하나 정도는 닦을 수 있을 거야.’

고무장갑을 끼고

하나 200원짜리 세제가 들어있는 수세미를 들고

수도꼭지를 닦았다.

세 번 정도 문질렀을까 수도꼭지에서 광택이 번쩍번쩍했다.

우와! 역시 도구를 바꾸니 삶이 달라진다.

200원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거기서 멈춰야 했다.

수도꼭지를 시작으로

세면대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으로

벅벅 문질러댔다.

몸통까지 야무지게 닦고

세면대와 닿아 있는 벽도,

세면대 앞에 서서 앉아서 손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닦았다.

시작을 하면 없던 힘이 마구 솟아난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다 손에 쥐게 된 바닥에 있는

파란색 목욕의자.

그건 아이들이 유아 때부터 사용하던 거다.

세면대 키높이가 안 되어

발받침으로 사용하던 물건이다.

지금은 방치 수준이고

가끔 딸아이의 긴 머리를 감겨줄 때

손을 짚고 엎드려뻗쳐 자세를 할 때 사용한다.

사용하기 전

샤워기로 물을 뿌려 위쪽을 대충 세척했다.

중간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으나

의자의 기능을 수행하느라

의자의 중간 부분이 파여 있다.

가벼운 플라스틱 목욕의자이지만

엉덩이의 곡선을 고려해 인체 공학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것이다.

살짝 오목하게 들어간 공간에는 물이 고이기 마련이다.

물때가 끼어 미끈거리는 앉은뱅이 의자를

닦았다.

파랑 수세미에서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겉면을 모두 닦고 헹궈냈다.

딱 거기까지만 했다면 좋았을걸.

목욕의자를 뒤집었다.

세상에나!

아래쪽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물기가 없으나 눅눅한 세상.

파랑은 없고 거뭇한 세상.

표면에 진흙을 얇게 발라놓은 것 같다.

수세미에서 나오던 하얀 거품이 암울하게 바뀌었다.

짙은 밤의 그늘은

오랜 세월의 땟국물을 품고 있었다.

울컥 가슴이 요동치더니

눈가에 슬쩍 눈물이 고였다.

왜 나는 이 플라스틱 조각 하나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지지리 궁상같이.

그래도 끝까지

틈새 하나하나

수세미를 쑤셔 넣어 닦아냈다.

내일 또다시, 가까운 시일 내에 또다시

목욕의자를 뒤집어 닦기 싫었기 때문이다.

미뤄왔던 묵은 청소는

후회와 뉘우침의 시간이었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가끔 필요한 물건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물건의 자리가 적당하지 묻는 시간이었다.

플라스틱은 튼튼하다는 걸 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의 묵은 아픔을 조금 덜어내는 시간인 것 같다.

왜 아프면서 속이 후련할까.

먹먹한 기분이 하루를 건너 그다음 날까지 계속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욕실 세면대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찔끔 울었다.

왜 울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목욕의자가 너무 더러워서

기가 막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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