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수세미와 수도꼭지

by 눈항아리

세제가 들어있는 파란 수세미는 일회용이다. 그런데 벌써 세 번 빨아서 썼다. 휙 버리기에는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은 그런 거창한 마음이 아니라 그저 손바닥만 한 200원짜리 수세미 한 장이 아까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땟국물을 쪽 빼고 비벼 빠니 파란색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으나 희끄무레한 하늘의 색을 닮은 것이 그럭저럭 쓸만해 보였다. 흐물거리는 수세미를 하늘과 숲이 보이는 창 틀에 잘 널어놓았다. 이런 ‘좀생이’ 같은 주부라니. 나도 통 큰 주부이고 싶다. 그러나 몇 번이고 빨아 쓰는 일회용 수세미처럼 생활 곳곳, 집안 구석구석에 꽁꽁 숨겨둔 삶의 미련, 그런 것이 어디 그것 하나뿐이겠는가. 어디 주부만 그렇겠는가, 누구나 다 그런 수세미 같은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다.



일회용 수세미와 보낸 날들을 돌아보았다. 첫날에는 수세미 자체 함유된 베이킹 소다의 위력을 실감했다. 다음날부터는 안 쓰고 버려두었던 탈모방지 샴푸를 꺼내와 한번 쭉 눌러짜서 닦았다. 그리고 마지막 4일째는 구연산수를 만들어 뿌리고 수세미로 닦았다. 구연산수는 성능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뿌리고 닦았다. 거품이 보글거리지 않아서 그런가 잘 안 닦이는 것 같았다. 설거지든 청소든 빨래든 거품이 보글거려야 세정력이 좋은 것 같다. 수세미가 부드러워져 쓰임이 다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세제를 더 묻힐까, 이제 그만 버릴까... 작은 것에 연연하는 나.


일회용 수세미는 4일을 쓰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헤어짐이 아쉬워 긴 작별 인사를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을까? 다행히 버릴 때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럴 땐 나도 꽤나 냉정한 여자 같다.




세면대를 닦으며 범위가 너무 넓다는 걸 깨달았다. 밤 10시에 퇴근해 5분, 10분짜리 집안일 몇 개를 하다 보면 화장실까지 손이 갈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꼭 하고 싶다. 나도 반짝이는 화장실,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깔끔한 욕실을 가지고 싶다. 나의 로망이 반짝이는 화장실이라니.


범위를 좁혀, 1분 안에 할 수 있는 청소로 시작하기로 했다. 첫 선택은 수도꼭지. 첫날에도 가장 먼저 손이 가던 곳이다. 열심히 닦는다고 닦았는데 아침에 보니 뒤쪽에는 때가 그대로였다. 다음날 수도꼭지 뒤쪽을 닦았다. 앉아서 올려다보니 수전 아래쪽에 묵직한 유령 같은 형상이 은색 금속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점점 부드러워지는 수세미는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해 가며 나의 수도꼭지를 광나게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또 마른걸레로 닦고 자세히 보니 하얀 때가 스티커 자국처럼 붙어 있다.


빛과 어둠, 묵은 때의 조화 속에 부드러워지는 수세미는 그저 문질러대고 있었다. 더 강력한 방법이 필요하다. 수세미를 버렸으니 강력한 철 수세미로 문질러볼까? 치약이 연마 작용을 한다던데 치약을 짜서 닦아볼까? 구연산과 치약을 섞으면 좋다는데 한 번 해볼까? 스테인리스를 닦는 연마제로 닦아보는 건 어떨까.


나는 계속 연마하고 있다. 고심해서 수세미를 다시 고르고 세제를 고른다. 고작 수도꼭지 하나 광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집 화장실은 두 개, 수전은 각 두 개씩 총 네 개. 언제 다 닦을지 기약할 수 없다. 화장실은 넓고 청소할 곳은 많다.




수도꼭지를 닦고 난 다음 날 큰 아이에게 물었다.

“뭐 달라진 거 없어? ”

나의 외모를 묻듯 화장실의 바뀐 모습을 찾아보라 했다.

“수도꼭지 새 걸로 바꿨어? 우와!”

아들의 통쾌한 반응에 나는 수도꼭지 하나를 잡고 광을 내려고 용을 쓰고 있다. 며칠째.


나의 로망이 고작 수도꼭지 하나 광내는 거라니, 참 우습지도 않다.

화장실 수도꼭지를 보며 미소 짓는 나. 그냥 그게 사는 재미인지도 모르겠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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