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직포 화분에서 자라는 고추 이야기 <고추테리어>
부직포 화분 속 고추는 나보다 키가 커졌다. 나와 키가 엇비슷해져서 녀석 내심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며칠새 내 키를 넘어버린 것이다. 화분 아래 받침과 바퀴가 있지만 나도 신발을 신었으니 퉁치기로 하자. 이제는 어엿한 성인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성인식을 겸하여 오랜만에 사진 한 방을 박아줬다. 고추나무 아래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하늘을 향해 핸드폰을 들고 찰칵. 뒷배경에 잡힌 감나무 보다도 훨씬 강하고 커 보인다. 슈퍼 히어로처럼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녀석 멋지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니 고추는 서둘러 꽃을 피워댄다. 날이 좋아서 피우는 것인지 벌써 겨울을 준비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꽃을 피우니 즐거워 보인다. 청춘의 꿈을 마구 피워대는 것 같아 보기 좋다. 그 꽃이 열매가 되고 빨갛게 익기를 바라는 고추나무의 염원과 하늘까지 뻗어대는 튼튼한 줄기의 기상이 고추의 키를 더 키워대는 것인지도 몰랐다. 꽃이 열매가 되지 못하더라도, 열매가 빨갛게 익지 못할지라도 고추는 오늘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다.
꽃에 둘러싸여 희희낙락 놀음만 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한낮의 태양은 뜨겁다. 축 늘어진 잎이 저녁의 선선한 바람을 맞아야 빳빳하고 탱탱해진다. 약간 귀찮은 일도 생긴다. 고추 줄기에 두 마리의 노린재가 움직이지도 않고 붙었다. 회색의 노린재는 뭘 하는지 비가 오는데도 며칠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나는 벌레 잡아 줄 생각은 안 했다. 청년같이 든든하게 커버린 고추에게 노린재는 조금 성가신 정도의 존재 밖에 아닐지도 모른다. 고추는 알아서 잘 크고 있다. 지금보다 더 작았던 여름날에도 나의 손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홀로 잘 견디면서 살아왔다.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걸 믿는 바보.
“달복아, 고추 좀 따와.”
셋째 아들에게 부탁했더니 빨갛게 변하고 있는 고추 하나를 따왔다. 부직포 화분 속 고추나무가 키운 첫 빨간 고추다. 아이는 그것을 소중히 들고 왔다. 고추를 따다 꼭지가 떨어졌다며 고추 꼭지까지 소중히 들고 왔다. 다른 것은 다 작아서 못 딴다고 했다.
“아니야, 네 개 더 따와.”
인정사정 보지 않고 그저 먹는데 급급해 마구 따오라고 했다. 고추의 수난은 나의 말과 손에서 비롯된다. 주인이 매우 먹보라서. 내 말을 듣고 고추 따기 전문 딸아이가 나섰다. 오빠 손을 붙잡고 나가더니 절대 따면 안 된다며 아예 고추 화분 앞에 지키고 섰다. 아빠가 좀 더 키워서 따야 한다고 했다며 못 따게 한다. 두 아이의 반대에 작은 고추 열매들이 화를 피했다.
용케 나의 먹성을 피해 유일하게 빨간 고추가 된 열매의 탄생과 죽음을 기념하며 사진을 남겼다. 기쁨의 사진이며 동시에 영정(?) 사진이다. 미안하다, 고추야. 빨간 고추를 씻어서 가위로 송송 썰어 무슨 음식에 넣었다. 무슨 음식인지 기억도 안 난다. 하도 작은 고추를 따서 송송 썰었더니.
바보 고추는 오늘도 비를 맞으며, 노린재의 우산이 되어 주며, 나의 마당 중앙을 차지하고 서 있다. 내가 옆을 지나가면 나보다 큰 키로 조금은 우쭐하며 내려다본다. 칫, 바보 고추. 다 커도 귀엽다. 은근 매력 있다.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