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해지는 언어>배추 벌판

by 눈항아리

팔과 다리와 머리와 몸통은 한 몸이다. 여기에 정신과 온갖 장기들,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세포들 하나하나가 나를 구성한다. 그래서 한 곳이라도 고장이 나면 영향을 받는다. 팔이 아프면 걷지를 못한다든가, 다리가 아프면 팔을 휘적일 힘도 없어지는 것처럼. 입 안의 작은 치아 하나로부터 시작된 강렬한 통증은 하루 온종일 생각을 마비시킨다. 고통에만 집중하도록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힘을 합한다.


아팠다. 아프지 않은 날이 있을까. 고통을 동반한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삶이라는 가정을 어느 순간부터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아프지만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지만 손가락을 칼에 베어 쓰라린 것처럼 그렇게 팔이 아팠다. 진통제와 소염제 한 통을 다 먹을 때까지도 아프면 병원에 가볼까 했다. 코로나 이후로 병원의 처방이 꽤 달갑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증상에 따라 처방만 해주는 병원 치료가 나 혼자 하는 운동이나 스트레칭, 음식 조절보다 훨씬 낫다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심각하게 아픈 게 아니라 덜 아파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주 많이 아팠다면 벌써 일을 못하겠다며 드러누웠을 테다. 나는 사실 골골 대기를 잘하는 엄살쟁이다.


날씬해지고 뱃살을 빼자 마음먹었지만 아픈 팔이 자꾸 마음을 주저앉혔다. 그러나 늘 ‘움직이자’라는 언어는 머릿속을 맴돌다 가슴을 통과하고 뱃살을 지나 다리에게 전해졌다. 매일 나는 명령했고 다리까지 내려보냈다. 그런데 팔이 아프니 팔에게 보내야 했었던가 보다.


선선해진 바람, 살짝 그친 비, 의뭉스러운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운 아침이었다. 팔과 손까지 전해지는 저릿한 느낌의 고통에 나의 절절함을 담아 보냈다.


“나에게 10분만 줄래?”


땀이 안 날 정도로 선선해진 날씨가 등을 슬쩍 떠밀어줬다.



딸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가을이 내려앉은 배추 벌판에 섰다. 5분, 동쪽을 향해 걸었다. 배추 들판을 지나 소나무 숲을 지나면 바다다. 바닷바람이 내 손을 잡아줬다. 팔짱을 꼈다. 다시 5분, 서쪽을 향해 걸었다. 서쪽 태백 준령의 준엄한 산등성이가 안 보여 좀 아쉬웠지만, 건물 위를 날아 들판을 가로질러 나에게로 내달려오는 산의 바람을 안고 춤을 추었다. 춤은 무슨, 열심히 차까지 걸어갔다. 손가락을 활짝 펴고 휘저으면서 걸었다. 촉촉한 가을 아침의 바람이 온몸을 통과하면서 지나갔다. 바람이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Shall we dance?"


바람이 꼬시니 당분간 들판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비싼 배추에 눈이 혹 하기도 했다. 배추만 봐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아파도 날씬지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하다. 그러나 안 아파야 날씬해지기 위한 노력을 더욱 기울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사뿐히 춤을 추듯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춤은 사뿐한 거 맞겠지? 춰 봤어야 알지. 그렇다고 들판에서 ‘흔들흔들 댄스댄스‘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나는 10분 산책을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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