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끙끙거리며 ‘아파’ 소리를 주문처럼 외고 다닌다.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지 나는 안다. ‘힘들어’ 한숨 쉬는 이런 맥 빠지는 소리와 같다. 반복되는 ‘아파’ 소리는 주변인들에게 전혀 측은지심을 끌어내지 못한다. 근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누구도 그런 얼굴이 아니다. 내가 누구의 관심을 끌려고 아프다는 소리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입에서 버릇처럼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쓸데없는 나를 깎아먹는 소리를 왜 습관처럼 나오게 하는 것일까.
대관절 아프다고 말하는 게 뭐 잘못인가. 아픈 걸 아프다고 하는데. 누구나 아프다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아프다고 계속 말하면 폐가 되는 것 같다. 갈수록 식구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시큰둥하다. ‘또 아픈 소리 하네. 안 아프면서 사는 사람 있나.’ 그런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중에도 아픔을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 딸아이는 나를 꼭 안아준다. 아들 셋과 남편은 대부분 그저 반응이 뚱하니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가끔 큰 소리로 아프다고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가란다. 나의 ‘아프다’는 소리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그저 공감능력이 차이일까.
그러나 계속 아프다는 소리가 주변에 긍정적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프다고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그렇게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고 나 혼자 끙끙거리자는 소리는 아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할 수도 있지. 그래서 여기 이렇게 아프다고 외치기 위해 글방 하나를 마련했다. 아이고 아프다. 아파 죽겠네. 잠도 못 자고 피곤해 죽겠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아프다고 외칠 권리가 있다. 하하하. 아주 속이 시원하다.
아프면서 큰다는데,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데, 질병이나 노화로 인한 고통도 그런 아픔에 해당되는 것일까. 아프면서 늙어간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기도 하다. 아픈 만큼 늙어간다. 흰머리가 더 늘 것 같고, 아픔 때문에 주름이 더 늘고, 성격이 괴팍해질 것 같다. 아 고통스럽다.
고통 속에서 보내는 날들이다. 종일 고통을 달고 산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다. 잠시도 잊을 수 없는 것. 육체의 고통은 내가 몸을 달고 있는 한 영원히 나를 따라다닌다. 이 육체를 벗어나려면 아직 한참이 남았는데 잘 구슬려서 데리고 살아야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불어 나는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말에 대해 요즘 심오하게 생각하고 있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으면 벗어버리고 싶었을까 싶다. 고행의 의미가 그런 것일까.
나는 수도승도 아니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픈 건 아픈 거다. 나는 아프다. 아이고 아파라. 계속 말하니 좀 덜 아파도 아픈 거다. 나는 아프다고 외칠 자유가 있는 사람이다!
아프다고 줄줄이 사탕처럼 내뱉으니 가족들은 가끔 한 마디씩 툭 던진다. 특히 둘째 중 2 아들 복이의 얼굴을 보고 ‘아파’를 시전 하면 아들은 뚱한 표정으로 그런다. “나요?” ‘그래 너.’ 내가 아픈 걸 아들 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냥 습관처럼 허공에 대고 읊는 주문 같은 거란다. 아들아 내 주술 같은 언어에 반응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래도 아들의 반응이 반갑기도 하고 아픔을 덜어주려는 마음 같아 은근 기분 좋아지려고 한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아이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아들은 냉정한 목소리로 그런다. “병원 가요.” 얼굴은 참 잘생겼는데 표정 없이 말을 한다. 아픔을 공유하려는 일말의 의지도 없는 무표정이다. 병원 나도 좋아한다. 참 좋아해서 그것이 문제인 때도 있었다. 그런데 팔이 아파 병원에 가면 팔만 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눈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심장도 아프다. 그중 팔이 가장 아프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나의 몸은 ‘종합 병원’인 경우가 많다.
팔, 다리리가 저리고 아파서 병원에 갔다. 정형외과에 갔던 어느 날 의사가 물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손목이 아파요. 그리고 어깨랑 목이랑 발목도 아파요.”
허리는 고질병이라서 빼고 말했는데도 온몸에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가끔은 몸의 여러 부분이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기도 하다. 나는 대체적으로 어릴 때부터 많이 골골거렸다. 그런 나를 아픈 사람 취급하기보다는 보통 엄살이 심하다고 했다.
그날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연 속으로 네 장이나 찍었다. 의사는 난감했을 테다. 아프다면 치료를 해줘야 하고 병명을 차트에 적어야 했을 테니까. 아니면 나 같은 엄살쟁이를 많이 봐왔을 수도 있다. 의사는 아주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근육통입니다. 요즘 무리한 운동을 많이 했나요?”
맞다. 밭일을 했었다. 2주일 전 일요일 딱 하루였다. 밭일 때문에 2주일이 지나서까지 근육이 아픈 건 좀 억울한 일이지만 말이다. 안 쓰는 근육을 움직여서 몸 이곳저곳이 아팠는지도 모른다.
의사는 몸의 한 곳을 특정해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중 가장 아픈 곳이라니, 가끔은 몸 여러 곳의 통증이 비슷한 정도일 수도 있다. 그때는 그래서 난감했다. 나는 다 아픈데 물리치료를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는 걸까. 광범위한 치료의 한계에 봉착한 나는 엉뚱하게도 의사의 진단에 대해 의심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아픈데 고작 근육통이라니 정말 맞나? 그런 의심도 커져갔다. 손목은 늘 받던 파라핀 치료라도 받고 싶었다. 의사를 만나기 위한 대기 줄도 길었는데 물리치료를 기다리는 줄은 더 길었다. 결국은 시간에 쫓기던 나는 물리치료는 못 받고 나왔다. 그냥 덜 아파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많이 아팠다면 통증이 기다림의 시간을 이겼을 테니까.
병원에 가면 그런 경우가 많다. 이곳저곳 다 아프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나를 봐온,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우리 언니는 날 보고 ‘종합병원’이라 부른다. 나는 진심 종합병원이 좋아할 상이다. 개인 병원은 너무 전문적이다. 그래서 팔이 아프면 팔만 봐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저곳 다 아플 때는 난감하기도 하다.
한 번은 손목이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다. 손목터널증후군이라고 했다. 손목이 저릿하고 나을 기미가 없었다. 손가락까지 찌르르한 고통이 퍼지면서 왠지 발가락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과로 갔다. 혈액 순환이 안 되는 거라며 약 처방을 해줬다. 한의원에 가서는 침을 맞았다. 세트로 뜸, 부황, 자외선치료, 찜찔까지 알차게 받았다. 파스를 하나 붙이고 나왔다. 한의원에서 파스도 붙여주는 걸 처음 알았다. 엄청 몸이 허하다 하여 한약도 한 재 지어왔다. 팔이 아픈데 과마다 처방이 다 다르다. 모두 치료를 목적으로 하겠지만 어디에 마음을 정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나는 그럴 때면 나의 아픔이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프다고 골골하면 ‘병원에 가라’는 말은 냉정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하기도 쉽고 받기도 부담이 없다.
어머님 앞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면 안 되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아픈 티를 내게 된다. 어머님은 몸에 좋은 음식을 줄줄이 읊어주신다. 때로는 만들어 주신다. 어머님이 챙겨주신 무슨 엑기스, 정체 모를 까만 액체가 냉장고에 몇 병 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다량 냉동하라고 주신다. 어른들 앞에서는 절대 조심하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늘 뒤에는 첨언하신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맞는 말이지만 아플 때 들으면 자기 몸 하나도 못 챙기는 못난 내가 된 것 같다.
소리는 파동이다. 물결 굽이치며 사방으로 퍼진다. 내가 습관적으로 내뱉는 ‘아파’ 소리도 사방으로 퍼진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닿는다. 가족에게 하다 하다 의사에게 가 하소연을 한다. 나는 내가 아픈 걸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일까? 절대 아닌데, 아니 맞나? 그냥 나는 아픈 것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가끔 복실이가 팔이 아파 끙끙 거리를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엄마, 괜찮을 거야.” 그러면서. 나를 안아주는 아이의 품에서 나는 안도를 느낀다. 꼭 금방 괜찮아질 것 같다. 아픔은 지속되지만 아이의 품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몸보다 한참 작은 어린이의 품에 안긴 나.
그래, 나는 위로가 그런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 ‘아파’ 소리는 나를 위로하는 소리다. 그러니 누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외칠 필요가 없다. ‘아파’ 작게 얘기해도 된다. 작은 신음을 알아채고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누군가의 ‘아파’ 소리를 듣는다면 그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라고 생각하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니까. 나는 나를 꾸준히 다독이고 보듬어 줘야 한다. 내 ‘아파’ 소리는 그런 의미다
누구나 아프다의 의미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다 같지는 않을 테다. 찬찬히 아픔의 소리가 퍼져나가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글을 쓰며 사고가 내 나이의 역사만큼 거슬러 오르내리며 아픔의 소리를 수집했다. 습관적으로 아프다고 말하는 건주변인에게 아픔의 고통 나누어주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공감을 바란다. 그러나 지속적인 통증은 가족들에게조차 공감되지 못한다. 내 아들이 ‘T’라서 그런 건 아니다. (자신은 절대 ‘T’가 아니라 ‘F’라고 한다) 평생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다.
이 글을 이틀에 걸쳐 쓰며 나의 ‘아파’ 소리는 작아졌다. 비록 하루지만, 횟수도 확연히 줄고 있다.
그러나 속으로 글로 더 크게 외친다. 누구 들으라고? 나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소리다. 나를 큰 소리로 위로한다.
“아프냐? 아프다! ”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친다.
‘아파’ 소리를 줄이려고 해도 가끔 통증이 심할 땐 얼굴을 찡그리고 괴로워하며 옅은 비명을 지른다. 그때는 어김없이 우리 딸 복실이가 꼭 안아준다. 아들 셋은 다 필요 없다. 딸이 최고다. 맞네 맞아,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픔에 대해서 나는 다중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픔에 대해서만 그럴까. 누구나 한 가지 마음으로만 사는 건 아니다.
때로는 아픔에 대해 내가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자. 작은 어깨를 가진 내 아이에게 기대는 것도 위안이 된다. 목표는 내 아픔을 숨기는 것이 아니다. 목표는 고통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나씩 들여다보며 알아가면 된다. 그러니 이 아픔이 끝날 때까지 나는 ‘아파’라고 당당히 얘기할 거다. 나 스스로에게 더욱 다정하게 말할 거다.
‘마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