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아침 밥 굶긴 날

by 눈항아리

일기 예보를 미리 보고 다음날 무슨 옷을 입을까 정하는 것처럼.

아침 현관문을 나서며 하루의 아침과 낮과 밤의 온도를 가늠해 보는 것처럼.

정해진 계절이 되면 꽃이 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고 열매가 열리는 걸 아는 것처럼.

가을에는 청을 담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벌써 10년을 매년 하는 행사니까.


정해진 계절 일정한 시기가 되면 해야만 하는 일들은 재난과 같은 어려움이 아니다.

계절이 올 것을 알았고 일을 해야 할 것을 알았고

그날이 왔을 뿐이다.

일기예보를 보고 겨울 옷을 미리 꺼내놓은 것처럼

그 일들은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대비할 수 있었다.


청을 만드는 계절이 올 것을 알았다.

그 시기가 오고야 말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몸이 알고 미리 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명절 무렵이 되면 뱃속 위쪽부터 꽉 막힌듯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가을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것인지도.



명절이 돌아오듯

당연하니 그러려니 해야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몸과 마음이 다 무겁다.

그러나 한 해 장사를 준비하는 시기이니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린다.

때맞춰 10킬로그램 박스로 생강과 모과를 시켰다.

병 개수를 파악하고 모자란 것을 주문했다.



어려운 일이 하나도 없고 준비물은 착착 준비가 된다

10년 세월의 오랜 습관이 쌓여 내 몸이 알아서 일을 척척 해낸다.

몸으로 체득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글을 계속 쓰면 체득하는 날이 오는 걸까?

몸이 기억하는 경지에 이르면 멋진 글이 술술 나오는 걸까 궁금하다.

‘술술’이나 ‘멋진’ 글은 먼 미래에 바라는 바,

바쁜 중 끄적임이 어제도 오늘도 잠시의 숨통이 되어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아파도 아플 수 없는 가을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꼿꼿하게 서 있지 않으면

아이들이 밥을 굶는다.

일요일 연장근무를 하고 마음이 약해져 골골댔더니 몸이 축 처졌다.

아침까지 내리 자다 정말 아이들 아침을 굶겼다. 손 까딱을 못한 아침이었다.


혈기왕성한 큰 아이는 냉장고에 있는 핫바를 하나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고,

둘째는 편의점에 들러 간다고 했다.

학교 앞 편의점 창가에 쪼르르 앉아

아침부터 컵라면을 호로록 먹는 초등 아이들이 생각났다.

바쁜 엄마들이 나 혼자뿐일까.

애들이 딱하다 생각하며 아침밥 안 챙겨 준 부모를 욕했었다.

나도 그런 날이 있더라는,

우리 애들도 밥 못 먹고 가는 날이 있더라는.



냉장고에 먹을 것을 쟁여놔야겠다.

밥 더하기 전자레인지에 돌린 음식이라도.

그것에 편의점 음식과 딱히 다른 점이 무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정신없는 가을.

집안일은 한참 뒤로 밀어두어도

배짱부릴 수 있는 계절인데도

아이들 아침밥 못 챙겨준 건 맘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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