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엔 서리가 이틀이나 내렸다.
생강은 다 얼어 누렇게 변했다.
풀은 맥없이 지푸라기가 되어 주저앉았다.
이웃이 심은 길가의 백일홍은 까맣게 얼어 죽었다.
앞산의 나뭇잎이 알록달록하더니 추락한다.
땅으로 땅의 빛이 되어.
모두 겨울의 소식을 듣고 돌아가고 있다.
논바닥에 흩어져있는 지푸라기 색깔,
흙을 닮은 밀 빛의 황톳빛 대지의 빛깔,
거뭇한 짙은 흙색을 닮아가고 있다.
밀짚 같은 텅 빈 줄기에서 억새 하얀 꽃이 피었다.
차창에 날리는 바람에게 흔들흔들 손짓을 한다.
붕 떠서 하늘로 날갯짓할까.
솜털이 날아오를까.
서 있던 들깨는 누웠고
비닐을 덮어쓰더니 망사를 덮어쓰더니
한 데 수북하게 쌓였다.
며칠 만에 알곡이 다 털렸고
빈 밭에 버려졌다.
퍼드러진 배춧잎은 단지가 다 앉지도 않았는데
겨울 준비를 한다.
부른 배 위로 허리끈을 질끈 동여맸다.
그래봤자 알배추 크기다.
긴 가뭄과 긴 가을장마로 고생하던 벼들은 논에서 사라졌다.
서두른 가을걷이 끝에
휑한 바람만 들판에 남았다.
아차, 논두렁에 한 줄 콩이 남았다.
시린 바람맞으며 서늘한 가을빛 맞으며
가을을 건너 겨울의 길목에 섰다.
그런데 해안에 가까운 마당에는
서리가 안 내렸는가 보다.
체리세이지가 아직 푸르르다.
국화는 꽃을 피우고
민트는 초록의 새잎을 더하고 있다.
봄날인듯한 초록의 가을.
봄날에 세이지 화분 다섯 개를 가져다 심었다.
쓰러지지 않게 짤막하게 줄기를 잘라내
꽃을 못 피우는 것이 아쉬웠는데.
여름 지나 가을이 되어
체리 세이지는 봄날의 숲처럼 우거졌다.
올해 꽃을 피우지 못했다면
뿌리를 더 키웠을 테다.
그래서 체리세이지는
가을날 초록의 숲이 되어 있었다.
땅속 깊숙이 내린 뿌리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내년 봄이 오면 더욱 두툼한 목질의 줄기를
세상에 내어 보일 것이다.
늦게 피는 꽃이라도 괜찮다.
필 것을 아니까.
체리세이지는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건너 겨울까지
군락이 되고 숲이 되어 크고 있다.
피어날 내일을 기다리며.
그러나 내일이 오기 전에 초록의 세이지 또한
서리를 맞고 겨울 추위를 맞서야 하는 건 똑같다.
겨울은 모든 것을 흙으로 품어주니까.
내일을 위해 웅크린 씨앗과 뿌리를 다독여 주니까.
창백한 흙빛의 겨울은 온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내일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