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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05. 2024

고군분투

비밀 가지 두부 카레

야채 먹이기는 성공적이다. 그저 야채를 잘라놓고,  씻어 놓고, 음식에 넣어 먹으면 그만이니 아주 편하다. 그 편한 것을 왜 안 하고 있었을까.



우선 상추를 하루 먹을 만큼씩 뜯어온다. 남편이 매일 비닐하우스에서 손수 뜯어 온다. 아내는 심어만 놓고 관리를 안 하니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매일 뜯어오는 것을 보니 쑥쑥 크고 있나 보다. 상추 말고 다른 채소들도 좀 심자 했다.


하루 야채 준비


상추를 씻어 물기를 잘 턴 다음 그릇에 담는다. 오이도 담는다. 장식을 위해 방울토마토를 세 개 담는다. 그러곤 랩을 씌워 한 끼 먹을 야채를 준비한다. 세 그릇 장만 성공! 상추 한 장만 먹어도 야채 먹은 느낌. 나는 오이를 안 좋아 하지만 생채소 먹기에 오이만큼 좋은 게 없다. 토마토는 오늘 보니 오이와 같이 먹지 말라고 하는데 예쁘게 준비해 놓은 것을 다 먹고 빼야 할까? 같이 먹으면 안 좋은 음식도 있고 음식의 세계는 미로와 같다.


마트에 있는 각종 야채를 가게 냉장고로 옮겼다. 가게와 집, 두 집 살림을 하니 집에 없는 것이 있고 때로는 가게에 없는 것이 있어 난감할 때가 있는데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가게 야채와 집 야채를 구분해서 모두 구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야채만 있다면 못할 반찬이 없다.


파, 마늘, 양파는 기본양념을 위한 야채. 부추, 고추, 양배추, 당근, 호박, 감자, 버섯을 기본 야채로 삼는다. 가지, 시금치, 숙주, 공나물 등 나물 반찬을 위해 돌아가며 추가 야채를 더 사기로 했다. 야채가 많아 가게 냉장고에는 다른 반찬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해결책을 얼른 내놓기를 바람.




그럼 야채 가득 요리를 해 볼까.

오늘은 카레.


호박, 당근, 감자, 양파를 작게 깍둑 썬다. 잘게 썬다. 특히 당근을 골라내는 녀석들을 위해 작게 썬다. 다양한 야채를 먹이기 위해 삼등분한 가지를 최대한 작게 썰어 같이 넣었다. 비장의 무기 아무도 모를 거야. 기름을 두르고 볶는다. 물을 붓고 푹 끓인다. 푹 끓여서 푹 퍼지게 한다. 그래야 모든 야채를 다 먹는다. 고기 식단을 좀 바꿔보고자 이번에는 고기 대신 부드러운 두부를 마지막에 넣었다. 카레를 섞으며 조금 부서져도 좋다. 꼬마들도 씹는 시간을 줄인다. 하지만 달복이와 복실이는 밥 씹는 데도 엄마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고기 때문이 아닌 것을 알면서. 과일을 잘 씹어 먹는 것에 위안을 삼아 본다.


비밀 가지 두부 카레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주부만 아는 비법을 담은 얄궂은 카레. 가족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가지를 먹였다. 성공! 이런 것이 남모를 기쁨이로구나.




라면 실태 확인


야채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고 라면의 시절이 끝났을까? 절대 아니다. 쌓여 있는 라면은 빠르게 소진되어 집에는 사리면이 하나, 가게에는 짜파게티와 사리면 하나씩 남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공수해 온 육개장 컵라면 박스가 아직 존재를 뽐내고 있다.


육개장을 머리보다 더 높이 올려놨더니 꼬마들은 더 이상 찾지 못했다. 컵라면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지만 뻔히 보이는 것을 말해줘야 할까 싶어서 그저 웃고 말았다. 찾아보아라 찾으면 하나 물 부어줄까?


남편은 라면을 몇 번 안 끓여 줬더니 엊저녁에는 컵라면을 하나 쌩하니 빠르게 들고 사라져 버렸다.  라면 생각이 났겠지. 어제도 5시 30분이 되도록 밥을 안 하고 바쁘기 그지없는 불량주부에게 맛난 치킨을 사준다며 배민을 뒤지고 있던 남편. 모치킨  새로운 메뉴가 나왔다며 얼른 배달을 시켰다. 라면을 부르는 음식은 왜 그리도 많은 것인지. 치킨을 먹으면 늘 얼큰한 라면 국물이 당기나 보다.  


그것으로 모자랐을까. 마트에 가서 쓰레기봉투를 산다더니 컵라면을 또 봉지에 가득 담아 왔다. 불닭볶음면은 컵라면으로 먹어야 맛있다나? 내 주방에 가져오지도 않고 20리터 봉지째로 자신의 로스팅룸 선반에 올려둔 것을 확인했다. 불닭볶음면만 있었을까? 멀찍이서 보니 참깨라면 컵도 있다. 가족들 하나씩 먹으려면 여섯 개는 사 왔을 텐데 참깨라면은 꼬마들 먹으라고 사 왔나 보다. 얘들아 좋겠다. 아빠가 최고지?


곧 며칠 내로 아빠와 네 아이의 컵라면 파티가 벌어질 것이 뻔하다. 아이고 두야.


복이는 집에 쌓여있는 비빔면을 야식으로 하나씩 삶아 먹더니 그것마저 다 떨어지자 할머니 집에서 너구리 하나를 공수해 와 홀로 야밤에 끓여 먹었다. 아이의 라면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웬걸 남편이 불량주부를 유혹한다. 함께 오후 간식을 먹자고 한다. 불닭볶음면 먹어 말아? 당연히 먹어야지. 우리의 불량주부 줏대가 없어!


괜찮아 지금은 간식이니까.


밥은 제대로 먹을 거니까.


야채식단으로 먹을 거니까 괜찮아. 괜찮아.


라면 구매를 매의 눈으로 계속 주시 요함.
야식 라면의 불필요함을 호소하자.

과일 간식을 준비해 두자.

야채를 먹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자.
새로운 야채 먹기 도전! 가지 성공!

이번 주에도 소지지, 가공육, 냉동식품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력은 하고 있다. 순대를 하나 샀다. 두 개 샀군.

식사 준비 시간을 지키자.

식단표??


주부의 작은 관심이 가족의 몸을 바꾼다. 불량주부님 잘할 수 있지? 이제 밥 준비할 시간이야.


그런데 이렇게 시간에 끌려다니는 기분은 별로야. 내가 이끌어가는 밥이면 좋겠는데... 역시 식단표를 짜야하나.


모두의 건강을 위한 밥하기 노력은 계속된다. 주부도 즐거운 밥하기. 주부가 주체가 되는 밥하기. 불량주부도 행복한 밥을 하기 위해 오늘도 파이팅! 불량주부도 야채 식단을 준비할 수 있다! 매일 작은 노력을 모아모아 부량주부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주부님! 이제 그만~~ 밥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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