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보나 Jun 02. 2024

유부초밥을 택하였을 뿐인데

정해진 야채 일색 재료를 이용하여 창조적인 저녁 밥하기 오늘의 미션!


점심에 야채 일색 재료를 장 봐온 터라 저녁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야채를 조합하여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불량주부.


점심엔 무엇을 먹고, 저녁엔 무엇을 먹고, 아침엔 무엇을 먹자. 이런 계획을 세우면 될 것을. 밥 하기 귀찮은 불량주부 계획을 세울 리 만무다. 이런 계획을 아마 식단표라고 한다지? 아이들도 학교에서 월마다 식단표를 미리 가지고 오던데 주부로서 밥 하는데 이렇게 머리가 아플 것을 알았다면 영양사가 될 것을 그랬나 보다. 계획이라고는 일도 없는 무계획 불량주부. 그녀의 밥준비는 늘 닥치면, 임기응변, 되는 대로다. 그게 문제다. 마트에 가기 전에 적어도 하루 삼시세끼 계획을 세우고 갔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저녁은 점점 다가오고 시간은 촉박하고 가족들은 망울망울 눈망울로 밥을 달란다. 사실 이런 눈망울로 밥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저 밥 주면 빠르게 먹고 제 할 일 하기 바쁘다.


그럼 오늘의 요리. 야채를 더 먹여야 하니 머리를 굴려 보아라. 시금치는 다 먹었다. 뿌듯하다. 이 뿌듯함을 더 느껴보고 싶다.


그럼 야채를 먹이기 위해 작게 썰자. 기본 3종 야채 호박, 양파, 당근을 푸드 프로세서에 빠르게 갈아준다. 볶아준다. 볶음밥을 할까? 아침에 먹으려고 했던 유부초밥을 뜯었다. 볶음 야채를 비벼준다. 초밥은 잠이 덜 깬 아침에도 인기가 좋은 메뉴다. 아침에 뜯을 걸 그랬나? 뜯어서 벌써 섞어버린 것을 어쩔 것인가.


얘들아, 저녁은 초밥이야!


저녁 메뉴가 초밥으로 결정되자 복이가 추가 재료를 청한다.


참치와 치즈를 넣어 주세요

그럼 가서 사 오너라.


언제부터인가 엉덩이가 무거워진 엄마를 대신해 복동이와 복이는 간단한 장보기를 해주고 있다. 포인트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넣어준다. 장보기 가짓수만큼 전화를 하기는 하지만 그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만 원을 가지고 나간 복이는 20개 입 슬라이스 치즈와 캔참치 작은 것을 사 왔다.


스크램블을 휘리릭 해서 밥에 섞었다. 이제 밥 완성! 삿갓 유부를 숟가락으로 조심히 벌린다. 참치를 고깔 꼭대기 구석 자리에 착착 넣고 자른 치즈를 넣어준다. 밥을 꽉꽉 채운 후 완성!


남편은 유부초밥으로는 저녁이 좀 부실한 것 같다. 비장의 무기 비빔면? 유부초밥도 밥이니 면 하나 어떠신가? 부족한 맛은 옆에 쌓여있는 재료에 기대게 되는 것이 사람 심리. 얼른 저것을 먹어 치우자. 가게에 마지막 하나 남은 비빔면을 삶는다. 야채를 먹어야 하는 날이므로 오이를 채 썰어 넣고, 콩나물을 삶아 넣었다. 야채와 면 반반 비빔면 아주 완벽하다. 남편에게 먼저 밥을 가져다 주니 콩나물은 별로란다. 그래도 콩나물과 오이까지 싹싹 다 비웠다. 참 뿌듯한 야채 먹이기.


아이들 접시에도 놓아준다. 김밥보다도 더 빨리 없어지는 유부초밥. 한 입 베어 먹고 두 번 베어 먹어야지. 막내 복실이 까지 커다란 유부 초밥을 한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학원 시간이 바쁜 복동이는 얼큰 라면을 찾지만 안 보이자 스스로 짜파게티를 하나 끓여 먹었다. 꼬마들도 덩달아 짜파게티를 먹는다. 오이채를 데코레이션으로 올려주니 질색을 한다. 그냥 썰어둬도 잘 먹는 오이를 왜 엄마는 짜파게티에 올려주고 싶을까?


달복이는 육개장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아이들도 음식의 궁합을 안다. 유부초밥에는 솔직히 짜파게티는 아니지. 그럼 매콤한 국물이 있는 라면이 어울린다. 그러나 오늘은 라면을 사 올 수 없단다 얘야. 당분간 엄마가 그렇게 마음으로 정했단다. 이제는 얼큰한 국물 라면이 다 떨어진 것을 어쩌냐.


달복이는 오이채 곱게 올린 짜파게티는 손도 대지 않는다. 유부 초밥을 몇 개 집어 먹더니 육개장을 사다 놨다 내일 먹으면 안 되느냐 묻는다. 자신의 용돈을 쓰겠단다. 왜 안 되겠느냐 아이야. 사다놔라. 엄마가 꽁꽁 감춰 두면 된단다.


유부초밥으로 배가 찬 달복이는 육개장을 잊었다. 그러나 다음날 잊지 않고 육개장을 사 가지고 하교하였다. 라면에 대한 집념은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라면 주의! 저녁 메뉴를 정해놨으니 그날은 못 먹는다고 하루를 만류하였다.


참고 사진 : 연재 글 쓰는 엄마 앞에서 육개장 사발면 먹는 복동이

그날 하루를 건너뛰고선 더 참지 못하고 육개장에 물을 붓는다. 복실이도 오빠와 함께 육개장 사발면 먹기에 돌입. 면발을 더 얻어먹겠다며 자신의 용돈 1000원을 오라버니에게 상납했다. 오빠는 동생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며 둘이 사이좋게 밥까지 말아먹었다. 꼬마 둘의 저녁 해결 아주 만족스럽다. 너희들 다음엔 얄짤없어~~.

 

여기서 끝일까? 육개장을 좋아하는 그 외 남자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육개장은 참 애정하는 가족 간식이다. 아빠가 복이에게 육개장을 사 오란다. 복실이가 달복이 오빠에게 육개장 또 사라며 준 1000원이 무색하다. 신이 난 복이는 마트에 가서 육개장 6개 입 한 박스를 사 왔다.


라면이 또 늘었다.


그리고 복이는 튀김 우동 컵라면을 집어왔다. 튀김 우동을 처음 만난 복실이 또 맛을 안 볼 수 없어 달려들었다. 육개장을 먹은 다음 날 간식 타임이었다. 자신은 앞으로 튀김 우동만 먹겠단다. 누가 사 줄줄 알고?


엄마는 그저 유부초밥을 저녁 메뉴로 정한 것뿐인데 며칠에 걸쳐 유부초밥에 곁들인 라면이 릴레이 향연을 펼쳤다.


하나 빠진 육개장 박스를 눈에 띄지 않도록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아무도 보지 마라. 보지 마라.




이전 05화 간편 잡채 시금치 파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