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층형 바구니에게 감사를
세탁을 마치고 거실로 건너온 잘 마른 빨래는 소파를 집 삼아 정착했다. 소파에 쌓이는 빨래가 얼마나 높았으면 나는 그 산을 태산이라 했을까. 빨래를 개는 100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타이머를 켜고 딱 정해진 시간만 하는 거야, 누구에게 미루지 말고 내가 하자, 하루에 한 번만 빨래를 개자 등의 규칙도 탄생했다. 그렇게 <태산을 옮기다> 글을 쓰며 매일, 또는 하루 건너, 이틀 건너 빨래를 개켜 소파를 비우곤 했다. 쉽지는 않았다.
<태산을 옮기다>프로젝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아이들은 자신의 빨래를 스스로 갤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움직이면 가족이 함께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가족의 구성원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100일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소파에 쌓이는 빨래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6인 가족이 매일 벗어내는 빨래의 양이란 여전히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 세탁기 2대 분량의 빨래를 쏟아내니 며칠 마음이 해이해지면 소파에는 여지없이 빨래산이 쌓였다. 가족들 누구나 ‘파댕기기’를 시전할 수 있는 흡사 땅굴을 파는 두더지가 된 것 같았다.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빨래를 개려고 노력한 날들 이후로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2024년 10월 1일 처음으로 소파 사진을 찍었으니 15개월이 훌쩍 지난 셈이다. 거실 소파는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소파 위에 쌓이던 빨래가 모두 없어졌다. 큰 마을 먹은 것도 아니요, 매일 시간 체크를 하는 것도 아니요,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도 아닌데 소파 위의 빨래가 사라지다니. 그런 기적적인 일이 단 며칠 만에 벌어졌다.
시작은 아이들의 방학과 함께 시작된 장롱 정리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벌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데 살다 보면 왜 장롱이 모자라게 되는지. 정리해도 엉망이 되어버리는 서랍장과 장롱에 구획을 나누었다. 수납함을 바구니를 넣어 볼까 하여 이 바구니 저 바구니 넣어보고 빼보고 며칠을 옷 먼지 속에서 보내다 바구니를 대량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생각보다 장롱은 정리할 곳이 없었고 안 입고 묵혀둔 옷을 정리하고 버리는 시간이 되었다. 버리면 여유가 생기다. 게다가 장롱에 구획을 나눠 정리하니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정리도 여유를 만든다. 평생 손이 안 갈 것 같던 안방의 5단 서랍장 위를 정리했고 미니 책꽂이를 놓았다. 이부자리에 누우면 딱 보이는 책꽂이다. 그날 밤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잠자리 독서를 했다.
바쁜 방학 동안 무슨 정리인가 하겠지만,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퇴근 후 밤 12시가 다 되도록 그렇게 정신없이 며칠을 보냈다. 왜 집안일을 시간 대중없이 하는데도 뿌듯함이 몰려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성과는 또 있다. 매일 짐이 쌓이던 장소, 짝 잃은 양말 바구니가 서성이던 현관 문 바로 앞에 둘째의 수납장을 놓았다. 요즘 둘째 복이는 부쩍 옷을 사들인다. 청바지, 청바지, 청바지, 후드티, 후드티, 후드티, 후드티, 후드티. 이번 방학엔 아이들 서랍장에도 구획을 나눴으나 겨울옷 몇 벌이 더해지니 더는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둘째 아들을 위한 전용 5단 서랍장을 시켰다. 플라스틱으로 공간에 딱 들어맞는 크기로 주문했다. 수납장 하나로 공간 정리가 한 번에 끝났다. 아들은 무척 흡족하게 혼자서 그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정리 안 되던 공간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가장 큰일은 그 후에 벌어졌다. 소파 위 빨래가 사라졌다. 플라스틱 서랍장에 이어 적층형 바구니를 샀다. 적층형 바구니는 장롱 정리를 위해 구입했다. 7개의 적층형 바구니가 도착했고 박스에서 꺼내 거실에 놓고 보니 소파 위에 있는 6인의 빨래를 구분해서 놓으면 딱이겠구나 생각이 드는 거다. 에어컨 옆 남편의 공구 몇 개와 쌓이는 먼지와 범벅이 되어있던 전선, 코드 뽑힌 전기 제품을 박스에 담아 현관 중문을 열고 과감히 퇴출 시켰다.(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빨래 담긴 적층형 바구니를 쌓았다. 양말은 하나의 바구니에 따로 담았다. 수건만은 빨래가 건조기에서 나오면 바로 개켰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소파는 여전히 빈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왜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리 가족은 빨래 없는 소파를 맘껏 누리고 있다. 감개무량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한다.
작은 변화들은 여전히 생기고 있다. 장롱 정리를 하다 묵혀둔 카펫을 꺼내 거실에 깔았다. 주방 싱크대 위, 아래 수납장도 정리했다. 큰 변화도 있다. 거실 책장의 3분의 1을 비웠고 수납장으로 쓰고 있다. 여전히 정리 안 되어 물건이 쌓이고, 소복하게 먼지가 쌓이는 공간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지극하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걸 알았다. 꾸준한 의지가 거실을 바꾼다. 꾸준한 의지가 결실을 만들어낸다.
사실은 적층형 바구니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자칫 광고가 될 수 있으므로 사진은 생략한다. 그러나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바구니 또한 만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은 자화자찬을 위한 글인가 보다.
주의! 바구니는 어디든 써먹을 수 있다. 그러나 정리를 한다며 물건을 마구 사들이면 그중 못 쓰는 물건이 분명 나온다. 지난달에 구입한 정리를 위한 품목을 보자. 수납장을 하나만 샀으면 말을 안 한다. 여러 개 샀다. 얼마나 샀느냐? 하나하나 짚어보자.
5단 서랍장. 복이만을 위해 준비했다.
적층식 바구니 7개. 개별 빨래를 개키기 전에 구분하고 있다.
적층식 틈새 정리대 4개, 하나는 잠자는 방 책 꽂이 용도로 셋은 장롱 속에 넣었다.
적층식 정리대 대형 4개, 소형 1개, 낮은 형 1개. 대형 2개는 수건 정리를 위해 사용했다.
적층식 정리대 대형 2개와 소형, 낮은 형은 틈새 수납 정리대와 함께 하나의 장롱 속에 들어가 있다.
옷 정리를 위해 슬라이드 형으로 3개, 옷 개켜서 놓는 용도의 50개의 플라스틱도 왔다.
마지막 두 가지는 쓰기가 힘들어서 짐이 되어 버렸다. 개수가 무려 53개. 네 명의 아이들에게 53개의 플라스틱 사용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보라고, 머리를 모아 보라고 사정하고 애원하였다. 지금은 장롱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것을 대체 어쩔 것인가.
그러나 득과 실을 따져 보아도 득이 많은 정리였다. 무려 53개의 플라스틱을 남긴 아름다운 정리.
바쁜 방학이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바쁘고 기나긴 방학에 집 정리할 정신머리가 남아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주부 경력이 빛을 발하고 있는 날들이다. 감사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