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1일
스스로에게 관리받지 못한 내 몸은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힘들어서,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잠을 더 자야 하니까. 일하랴 집안일하랴 에너지 쓰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이던가. 이유를 대고 핑계를 만들면 밤새도록 지어낼 수 있다.
그런데도 집에 오면 노곤한 몸을 이끌고 식탁에 앉는다. 주섬주섬 과자 봉지를 풀어놓고, 아이들을 불러놓고, 야금야금 주워 먹는다. 함께라는 이유를 대며. 한 봉지로 아쉬워 두세 봉지가 된다. 단 과자는 달아서 짠 과자를 찾고, 매운 것을 찾아 라면을 한 봉 끓이고, 씹을 것을 찾아 누룽지를 부순다. 사는 게 이런 재미지. 먹는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 그렇게 먹고 싶은 대로 맘껏 먹었다.
나의 의지가 아닐 거야. 아프면 단 게 당긴다잖아. 어디가 고장 났는지도 모르지. 먹성이 좋아지는 병도 있는 거 아니겠어? 이런 마음의 속살거림도 있었다. 그건 악마의 재잘거림이었을까.
사실 요즘 먹고 싶은 게 영 없다. 입맛이 없다. 살면서 먹고 싶은 게 없는 것만큼 우울한 일이 있을까. 점심엔 뭘 먹지? 저녁엔 뭘 먹지? 밥을 해야 하는 걱정보다 먹고 싶은 게 생각이 안 나서 괴로운 날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입맛이 돈다.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안 먹던 과일을 먹으면 침이 꿀꺽 고인다.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게 분명하다. 밥은 그렇다 치다. 안 먹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없던 입맛이 퇴근을 하고 집에만 도착하면 마구 먹고 싶은 것이다. 저절로 주전부리에 손이 간다.
그래 나의 정신이, 무의식이 원한다는데 어디 한번 실컷 먹어보자.
그렇게 내 배는 불러왔다. 출산을 앞둔 산모의 배라 해도 믿을 정도다. 나 병난 거 아닐까. 복실이는 그랬다. 아이를 많이 낳은 내 배가 축 늘어져 있어서 그렇다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부풀었다가 안 먹으면 푹 꺼지는 거라고. 무슨 풍선도 아니고, 주머니도 아니고. 그래도 아이의 그런 말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뭘까. 그러나 그런 위로도 힘이 되어주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배가 단단하고 빵빵해졌다.
배만 빵빵해졌겠는가. 아침이면 손라락이 퉁퉁 불어 터질 정도였다. 그게 며칠 만에 완성된 일이겠는가. 서서히 부풀고 찌고 망가진 것이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삐그덕 자빠지는 게다.
사실 몸은 서서히 이상을 느끼고 있다. 잠을 자다 심장이 저릿해서 깨는 경우가 많아졌다. 손발이 저린 거야 몇 년 겪어서 혈액 순환이 안 되는 거겠거니 하는데, 이제는 머리까지 저릿한 상태에서 깬다. 심장이 날뛰는 부정맥 증상은 안 나타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폭풍의 전야가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로 여러 증상이 누워 자는 밤의 나에게 조용히 찾아왔다.
운동을 해야 하는 것도 알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도 안다. 야식은 그리 자주 찾지는 않았는데 내 안에서 뭔가가 강력히 요구를 하는 듯했다. 고장 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무작정 달리며 잘못된 계속 명령을 계속 전달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안일하게 보낸 시간 동안 살이 쪘다. 체중 증가는 나에게는 충격적인 변화다. 나는 평생 출산 시기를 제외하고 몸무게가 제자리를 찾고 나서는 몸무게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나이가 먹어가면서 체질이 변하는 건지, 체중을 안 잰 몇 개월 동안 4킬로그램이나 살이 불어난 거다. 그 무게는 뱃살에 붙은 것이 분명하다. 배가 남산만 하다. 풍선처럼 부풀었고 빵빵하다. 그게 가스든 살이든 내장지방이든, 그냥 지방이든 뭐든 빼야 한다.
이래선 안 되겠다! 뭐든 해야 한다. 움직이는 게 안 되면 먹는 거라도 중지해야 한다.
더불어 함께 과자 봉지를 뜯던 딸아이와도 마음이 통했다. 개학을 앞둔 아이는 긴 겨울방학 동안 따뜻한 동굴에서 잠을 자다 나온 곰 같다. 곰은 겨울 동안 잠만 자고 밥은 안 먹는다는데 우리 딸은 겨울의 동굴에서 잠은 안 자고 먹기만 하다 나온 모양새다. 아이의 배는 내 배와 우열을 가릴 정도다. 우리는 서로의 배를 어루만지며 약속했다.
오늘부터 1일.
참아보는 거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양치질부터 했다. 양치질은 절대 안 먹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시련은 늘 가까이 있고 우리를 피해 가는 법이 없다.
복실이와 나, 우리 둘이 먹을 걸 안 꺼내면 아무도 안 먹을 거야, 생각했으나 우리 집 야식의 왕 복이가 빠질 수 없었다.
지난 1주일은 야식의 최고조에 이르는 날들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매일 일이 끝나고 나면 마트에 들러 야식을 왕창 사들였다. 하루 먹을 걸 조금씩 사겠는가. 식구도 많고 입도 많고 누가 뭘 먹을지도 모르니 이것저것 골라 담았다. 이유가 무어 필요가 있는가. 먹고 싶은 욕구는 봉지 하나를 가득 채우는 법이다. 아들 둘과 함께 가면 손에 하나둘씩 더 들고 오게 된다. 그렇게 남겨진 과자 중 한 봉지를 둘째 아들 복이가 꺼냈다. 손가락에 과자 부스러기 묻히는 걸 싫어하는 아이는 젓가락과 과자 봉지를 들고 앉았다. 그것도 내가 매일 앉던 그 식탁 자리에. 부스럭 바삭, 부스럭 바삭. 유혹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밤의 유혹.
복실이와 나는 고민했다. 먹을까? 하나만 먹을까? 양치를 또 해야 하잖아.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1일 할까? 아냐, 아냐. 나는 허니버*칩 안 좋아해. 그래 안 좋아해. 나는 좋아하는 데 참아볼래. 배가 너무 불러. 우리 배가 많이 불렀잖아. 먹지 말자. 그래 먹지 말자. 그렇게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뱃살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복이는 혼자서 꿋꿋하게 앉아 과자 한 봉지를 혼자 다 먹었다.
복실아 빨리 자자. 배가 고파오는 것 같아. 복실이와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1일이 지났다.
오랜만에 야식을 안 먹었더니 아침의 배가 홀쭉했다. 웬일로 아침에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다 났다.
우리는 서로의 배를 확인하며 미소 지었다. 복실이는 자신의 배가 그렇게 많이 들어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내 배는 하루 사이 완벽하게 빠졌다. 하루만의 변화가 놀라워 체중계에 올라섰으나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뱃속에 든 음식물이 온몸에 골고루 배분되어 저장이 된 걸까.
초등 딸아이와 함께하는 야식 참기 프로젝트 <야식을 참아라, 딱 100일만>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