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눈 가리고 아웅
<야식을 참아라, 딱 100일만>은 초등 딸아이와 함께하는 야식 참기 프로젝트입니다.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아침은 안 먹으니 두 끼가 된다. 그동안은 아침 커피 타임, 식사 중간중간에 먹는 간식, 야식 등으로 큰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야식을 안 먹으니 저녁부터 시작해 비워진 위장이 신호를 보낸다. 꾸르륵.
무수한 음식 메모 중 하나를 골라볼까. 전날 아이들이 먹었던 야식 메모에는 없던 핫도그를 골랐다. 아들이 핫도그 가게 옆에 있는 학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끝나는 시간은 3시. 나는 2시부터 핫도그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일반으로 설탕 묻혀서 두 개 부탁해 아들’
평소 문자 같은 것엔 답이 없던 아들이 넉넉한 페이 송금 톡에 먼저 반응을 했다. 그러곤 핫도그 배달까지 완벽하게 해 준다. 역시 아들이 최고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 튀김 음식을 먹고 포만감이 극에 달했다. 저녁은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늦게 먹었다. 기름진 뱃속이 거북했다. 밤에 잠들기 전까지 배가 고프면 안 되니까, 야식을 참는 대신 낮에 먹는 간식은 괜찮아, 등의 이유를 만들며 부푼 배를 달래고 진정시켰다. 비록 뱃속은 가득 찼지만 며칠 음식을 참아서 막혔던 속이 뻥 뚫렸다.
밤에 먹지 않기 위해 낮에 챙겨 먹었다. 밤에 참는 대신 낮에 참지 않았다. 그래도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핫도그 딱 하나만 먹었다. 아들의 손에 들려온 따끈따끈한 핫도그는 정말 맛이 있었다. 20분 차를 타고 온, 아들이 사다 준 핫도그가 안 맛있을 수 없다.
낮에 먹으나 밤에 먹으나 매한가지인데, 쯧.
흥청망청 낮을 보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정신 상태로 야식을 참을 수 있을 것인가.
퇴근 후 빨래를 돌리다 깜빡했다. 우리의 양치질. 도착하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은 딸아이 복실이는 그새 엉덩이가 의자에 붙었다. 바로 욕실로 데리고 들어갔어야 했다. 깜빡이는 정신 때문에 큰일이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 잡아끌고 욕실로 가려는데 화장실로 도망간다. 화장실 앞에서 시녀처럼 대기하고 있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손을 잡았다. 이 녀석 잡았다. 우리는 함께 의지를 다지며 양치질을 하러 간다. 손깍지를 끼고 다정하게 걷는다.
오늘은 아무도 야식을 안 먹는다. 아침 출근길에 내가 부탁을 해서 그런가. “얘들아, 복실이랑 엄마랑 당분간 야식 안 먹기로 했어. 너희들도 동참해 주길 바라. ” 아들들은 하나같이 먹는 걸 참지 말고 운동을 하라고 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움직이는 게 최고라는 걸 나도 안다. 차근히 하나부터 시작해 보려는데 초를 치지는 말라고 이 녀석들아. 운동만 해서는 안 되니까, 식이요법도 필요한 법이지 않겠니? 그중 야식을 끊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먼저 시도하는 거지. 말은 청산유수다. 이유도 그럴듯하다. 그저 운동이 귀찮아서 그런 거면서.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부르는 배를 지켜보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나는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멋진 사람이다!
누구도 야식을 안 먹었다. 내가 먹지 말라고 해서 안 먹은 게 아니라 토요일의 불타는 밤을 보내며 게임에 몰두하느라 누구도 먹을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음식을 펼치면 한 손을 척 걸치는 게 당연스러웠지만, 내가 간식을 안 차리니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안 먹었다. 입으로는 절대 안 먹었다.
대신, 눈으로 먹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쭉 먹었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눈으로도 먹는다. 일요일에 영화를 보고 밥을 먹기로 했다. 예매는 남편이 진행했고, 나에게는 뭘 먹을 건지 정하라고 했다. 선택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는 퇴근 후 줄곧 잠들기 전 까기 쭉 다음날 먹을 점심 메뉴를 골랐다. 눈으로 보고 먹고 마시고, 쭈욱 치즈를 늘리고 닭갈비를 쌈 싸 먹었다. 소스를 왕창 뿌린 두툼하고 큼지막한 수제 왕돈가스를 자르고, 보글보글 탕을 끓이고, 매콤 얼큰한 칼국수의 면발을 들어 올리고, 짬뽕 국물을 후루룩 들이켰다. 샤브샤브 반반 국물에 어묵 꼬치를 넣고 도르르 말린 소기기를 집어넣었다. 참숯 불판을 올리고 지글지글 고기를 몇 점 구웠고, 초밥 뷔페를 돌아봤다. 호텔 뷔페를 빼놓을 수 없으니 바닷가 어느 호텔까지 가서 눈호강을 하고 빈 입을 쩝쩝거렸다. 야식을 안 먹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한데 배가 불렀다. 눈으로 먹어도 포만감이 생기는 건가.
식탁에서 세 시간 동안 맛집을 검색한 나는 결국 닭갈비집으로 행선지를 정했고, 메뉴까지 알차게 정했다. 꼭 먹어본 사람처럼 후기와 리뷰, 할인까지 줄줄이 섭렵했다. 야식을 안 먹어도 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으로 새기고 마음에 저장한 음식이 왜 배가 부른 건지 모르겠다. 낮에 먹은 간식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