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야식은 애매한 개념
네 명의 아이들이 개학을 했다. 모두 집에 오면 씻고 잠자기 바쁘다. 당분간 야식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씻고 바로 잠자리에 누웠다. 오늘도 성공?
잠자리에 도란도란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매일 새벽까지 깨어있던 정신이 바로 잠에 빠지기는 힘드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왜 하필 먹는 쪽으로 빠졌을까.
“아침에 뭐 먹을 거야?” 달복이가 물었다.
“나물 남아서 그거 비벼 먹을 거야.”
“나는 그 나물밥 맛이 없던데.”복실이가 말했다. 달복이도 나물밥은 별로라고 했다.
“그럼 너희들은 계란 비빔밥 해줄게.”
“계란 볶음밥으로 해줘. 그리고 또 뭐 있어?”달복이가 말했다.
“저녁에 먹은 도토리묵 맛있었는데. ”복실이가 말했다.
“나는 못 먹었는데.”달복이가 말했다.
“그거 집에도 있어. 비빔 간장 해서 먹으면 되니까 아침에 줄게.”
달복이의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들렸다. 뱃골이 작은 달복이는 밥 양이 많지 않다. 배가 고픈 소리인가 했다.
“얘들아 배고프니까 우리 빨리 자자.”
두런두런 자장가처럼 주고받던 우리의 말소리를 차단하고 감은 눈에게 잠을 자라고 재촉했다. 내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빈 뱃속이 참 대견했다. 온몸에 나른한 뿌듯함이 퍼졌다.
기쁨은 잠시였다. 옆에 누워있던 복실이가 말했다.
“나는 배가 너무 불러. ” 복실이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녁은 일찍 먹었는데 왜 배가 부른 걸까?’
“복실아, 뭐 먹었어? ”
“응, 짜파게티.” 복실이가 만족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짜파게티라니? 너! 언제 누구랑 먹었어?”
“응, 고모가 끓여줬지. 8시 조금 넘어서 먹었어.” 복실이가 아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우리 야식 안 먹기로 했잖아. 나만 빼놓고 치사하게 너만 먹으면 어떡해.” 순간 내 속에 있던 여과되지 않은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와 버렸다. 약속을 깨고 혼자 짜파게티를 먹은 복실이를 탓하는 소리였다. 나는 안 주고 먹다니, 원망스러운 속마음이 툭하고 뱉어진 것이다.
복실이는 나를 안아주던 손을 거두어가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러곤 몸을 잔뜩 웅크렸다.
“내가 나빴어. 나는 나쁜 사람이야.” 복실이가 힘없는 투로 말했다.
제대로 삐쳐버렸다. 어쩐다. 어쩌긴, 수습해야지. 나는 지혜롭고 변화무쌍한 어머니다. 바로 태세 전환에 들어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엄마도 저녁 먹은 다음에 떡 두 개나 먹었어. 괜찮아. 집에 와서 안 먹으면 되는 거야.”
생각해 보니 야식의 범위를 우리가 정하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그래 퇴근 후 양치질 후 집에서 먹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저녁 식사 후 먹은 꿀떡 두 개가 얼마나 양심을 콕콕 찔러대던지.
“엄마 떡은 아주 작은 거잖아. 나는 한 개 다 먹었단 말이야. 내가 나빴어.” 복실이가 말했다.
맞기는 맞는 말이다. 내 떡은 정말 작은 떡이었다.
괜찮아, 괜찮아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아이를 구슬렸다. 이미 먹은 걸 어쩌겠는가.
그리고 야식에 관한 정의를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식은 참으로 두루뭉술하고 애매한 개념이다. 밤이란 언제부터인가. 저녁과 밤의 경계는 무엇인가. 물을 안 마실 수 없는데 음료는 마셔도 되는가 안 되는가. 밥을 늦게 먹는 경우는 어쩔 것인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작은 떡 정도는 되는 거 아닐까. 저녁 먹고 몇 시까지 가능한 걸까.
야식을 정의한다.
야식은 저녁 식사 후에 먹는 물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복실이와 나는 저녁 식사 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 복실이와 함께 하는 건 ‘집에서부터’라고 정하자. 우선은 나만의 기준을 정하기로 했다. 저녁밥이 늦어진다 하더라도 8시 이후에는 절대 먹지 않는다. 저녁밥을 하루 걸러도 괜찮다.
그럼 먹을 건 물만 남았다. 그래도 먹을 게 아주 없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일은 잠자기 전에 옥수수 물을 보글보글 끓여서 따끈하게 호록 호록 마셔야지, 하고 생각했다. 목구멍으로 넘기는 따뜻한 물 한 모금에 쏟는 정성이라니, 그것도 밤의 상상 속에서, 정말 못 말리는 ‘먹을 것’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