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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19. 2024

부창부수 난감할세

오후 4시에서 5시로 넘어가는 시간은 남편이 배가 고픈 시간이다. 아내가 간식을 준비해 줄 리 없으니 스스로 라면을 끓여 먹는 게 일상이었다.


가게에는 라면이 없다. 과연 그럴까?


아침 인사도 안 하고 출근하는 남편을 불러 세웠다.  라면을 가방에 넣고선 슬그머니 중문을 열고 나가는 걸 발견했다. 잡았다!


”라면을 왜 가지고가?”


“집에서 안 먹잖아. “


가방에서 매콤 볶음 컵라면을 들어 보이더니 그런다.


‘컵라면이 거기서 왜 나와?’


어디에다 숨겨두었던 컵라면을 가지고 나가는 것일까. 가방에는 컵라면 말고도 주말에 사 온 매운 봉지 라면과 짜장 라면도 들어있다.


”짜장 라면은? “


”애들 끓여주려고. “


몰래 가져가다 딱 걸려서 같잖은 변명을 갖다 붙인다.


‘두고 보겠어요.‘




“불량 주부님 저녁을 좀 일찍 하세요. 지금은 밥 할 시간이랍니다. “


지금은 밥을 할 수 없다. 남편이 원두를 볶는 동안 가게를 봐야 한다. 공식적으로 밥을 늦게 할 수 있는 꼼수가 생긴 주부님, 슬금슬금 밥 하기 귀찮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이 반복이다. 가게 일을 하다 밥을 해야 하는 불량주부. 늘 밥시간을 어찌 때울까 생각한다. 굳이 생각을 안 해도 일하다 보면 흘러 흘러 다가오는 밥시간이다. 결전의 순간이 최대한 다가올 때까지 생각은 멈추고 걱정만 한다. 행동은 절대 없다. 그러다 최종 선택으로 배달을 시키기도 한다. 내 배를 먼저 대충 채우고 힘을 내서 밥을 하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안 하면 남편이 뭘 배달시킨다.


꼬마들이 없었던 어제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시켰다. 복동이와 주부의 햄버거만 시켰다. 자신은 늦게 오는 복이 와 먹는단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먹고 열심히 일했다. 복이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자 둘이 가서 외식을 하고 오겠단다. 그들이 간 곳이 어디겠는가. 치킨집 아니면 중국집이겠지. 결국은 자장면, 짬뽕에 밥 한 그릇씩 말아먹고 배가 빵빵해져서 돌아왔다.


라면 금지의 여파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다른 간편식으로 눈을 돌린다. 라면을 먹을 수 있다면 커다란 덩치로 살금살금 걷기도 불사하고, 라면 비슷한 면을 먹기 위해 일을 하다(마감 시간이 가까워지기는 했다) 원정을 가서 먹기도 하며, 간편식 이것저것을 기웃거린다.


그것은 아내를 위한 배려일까?

밥을 안 주는 아내를 향한 반발심일까?

배고픈 자의 구차한 선택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식습관이 엉망이라서 그런 것일까.



우선은 밥 하기 힘든 아내를 위한 배려라고 해두자.


그러한 배려심으로 어느 날은 그분이 레토르트 식품을 배달시켰다.


대형 마트 배달앱을 이용해 장을 보는 남편, 가게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산다. 사면서 라면을 꼭 넣었는데 이번에는 양심상 라면을 넣을 수는 없었나 보다. 라면 대신 따라온 즉석 짜장 두 개. 1+1 상품이란다. 3분 카레처럼 데워 먹으면 된단다. 양파를 좀 볶아 넣으면 더 맛있단다. 리뷰도 주르르 훑어보았나 보다.


남편이 구매 후기까지 꼼꼼히 찾아보고 시킨 걸 뭐라 나무랄 수도 없고 밥도 편하게 먹고 아주 좋다. 센 불에 양파를 볶아 봉지 짜장을 붓고 바로 데워서 밥에 얹었다. 계란 스크램블까지 담아주니 빠르고도 근사한 짜장밥 완성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 죄책감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너무 쉽게 밥을 하면 올라오는 정체불명의 감정이다. 라면과 동급의 식품들을 먹을 때면 으레 드는 생각이다. 간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도록 나온 레토르트 식품은 주방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마음도 혁신적으로 좀 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집밥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일까. 절충안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아야 할까. 가끔이면 괜찮지 않을까. 슬금슬금 편리함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매일은 아니니까 괜찮아. 가끔인데 뭐.


즉석 짜장은 아주 만족스러워 다음번 마트 구매할 때 또 시키기로 했다. 1+1 구매라며 바로 사야 한다는 걸 겨우 말렸다.


남편의 꼼수, 밥을 제때 주면 해결될까?


불량주부는 혼자만의 의지로 식생활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꼼수 남편과 건강을 위해 일대일, 면대면 상담을 해봐야겠다. 꼼수 남편만 변수일까, 우리 집에는 변수가 될 수 있는 네 명의 아이가 더 있다. 스스로 걸어 다니며 용돈을 가지고 편의점이든 자장면집이든 어디든 두 발로 갈 수 있는 네 명의 아이가 더 있다.


그리고 라면만이 문제가 아니다. 라면을 비롯한 면류, 빵, 떡, 도시락, 소시지, 매일고기, 튀김음식, 편의점 간편식, 냉동식품, 레토르트식품, 햄버거, 콜라...... 문제의 먹거리가 너무 많다. 정성이 들어간 집밥 빼고는 모두 처단해야 할 적일까.



온 가족이 모여 먹거리에 대한 의견을 모아봐야겠다. 해법은 과연 있을까.




아직 저녁 준비 전이다. 꼬마 둘은 와서 과일을 먹었으니 조금 천천히 줘도 된다. 지금 막 도착한 복이는 배가 고픈가 보다.


”오늘 저녁은 뭐야? 햄버거 어때요? “


”엄만 어제 햄버거 먹었는데? “


”난 어제 자장면 먹었잖아. “


싱긋 웃어주며 나가는 복이. 엄마가 밥을 하는 사이 자전거를 타고 온다며 나간다.


불량 주부가 느릿느릿 밥을 하러 간다고 하니 남편은 말없이 물을 끓인다. 지붕이야기 어쩌고 딴 소리를 하며 끓인 물을 들고 불량 주부 앞을 지나간다.


오늘도 밥시간이 늦고 말았다. 불량 주부도 배가 고프다. 혼자 먹고 치사한 남편.


“나도!”


이러면 안 되는데...  난감하다.


매운 볶음면에 김자반은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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