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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23. 2024

편식쟁이 복이의 라면 입성기

라면 그 환상의 파티 / 라면 광고 아님 주의

누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데 우리 집에는 하루라도 라면을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어린이가 있으니 바로 둘째 복이다. 한 끼 주식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라면의 입지. 그것은 복이가 라면 요리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일 년 전의 일이다. 그날의 라면 파티, 그 환상의 날을 되짚어 본다.




오늘의 글은 지난밤 아이들의 라면파티가 시작되며 큰 즐거움을 예상한 엄마의 타자치기와 함께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일명 글쓰기의 크로키기법. 직접 개발한 일명 ‘글쓰기 크로키기법’은 바로 옆에서 상황을 본 듯한 생생함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글쓰기 방법이 있다고 한다.)


눈을 반쯤 감은 아이 무릎에 기대어 끔뻑끔뻑.


“자기 시~른~데~ 더~ 놀~ 고  ~~시~ 픈~데~~”


아이의 요구대로 적은 것. 잠이 온 것을 표현한 것임.


빨래를 개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는 잠이 안 들려고 갖은 애를 써본다. 빨래는 원래 있던 소파 위에 얹어두고 아이를 재우러 간다. 재움이 필요한 아기 복실이는 초1이다.


이 와중에 야식의 유혹에 빠진 자라나는 청소년들, 짜파게티를 먹겠다고 선언한다. 이어 불닭볶음면을 먹겠다고 선언한다.


아이를 이불에 내려놓자 짜파게티 소리에 눈을 번쩍 뜨며 뛰쳐나간다! 삼시 세끼 짜파게티를 먹어도 좋은 막내는 잠에서 완전 깨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지난밤 10시에 벌어진 라면 파티. 우리 집의 일상, 라면파티 레시피를 공개한다.


짜파게티 요리사 : 오빠1


1. 오빠 1 냄비를 물색한다.


2. 오빠 1 계량컵을 찾는다. (라면 끓일 때 계량컵 쓰는 것을 이해 못 하는 엄마는 대충 물을 부어 끓인다. 하지만 오빠 1과 오빠 2는 철두철미한 성격 -은 무슨 아빠를 닮았다-이라 꼭 계량컵을 이용한다)


3. 오빠 1 왼손에 핸드폰을 든다. 레시피가 핸드폰에 든 것도 아닌데 짜파게티가 끓는 내내 핸드폰을 들고 본다.


4. 오빠 1 오른손으로 냄비 내용물을 젓는다.


5. 오빠 1 다행이다. 뜨거운 물을 버릴 때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6. 오빠 1 까맣게 비빈다.


7. 오빠 3과 아이 1에게 짜파게티를 먼저 준다.


8. 오빠 1 조금만 먹으라고 말해준다. 불닭볶음면과 같이 먹어야 하므로.


9. 한 젓가락씩 얻어먹은 오빠 3과 아이 1 모자라서 삐침.


10. 짜파게티가 없어 삐친 오빠 3 방문을 닫고 들어가며 퇴장.


11. 오빠 1 물을 들이켜며 벌게진 얼굴로 참치, 계란프라이, 마요네즈 등을 찾으며 계속 물을 들이켠다. 불닭볶음면을 그새 끓여 와서 먹고 있다.



12. 오빠 1 : 그냥 먹기에는 너무 매워.


13. 오빠 2 : 설탕 넣을래?(다행이다. 설탕은 첨가하지 않는다.)


14. 오빠 1 콜라를 가져와 같이 먹음. 그러나 벌게진 얼굴이 안 돌아옴.


15. 불닭볶음면을 하나 더 끓이는 오빠 2 뒤집개를 찾음. (계란 프라이에 처음 도전하려는 모양임)


16. 오빠 1 딸꾹질을 한다. 입술이 빨갛게 변하며 두툼해지고 어쩔 줄 몰라한다. 얼음을 가지러 간다.(불닭볶음면 먹는 것 보는 재미^^)


17. 오빠 1 얼음을 물고 불닭볶음면을 끓이는 오빠 2에게 가서 훈수를 둔다.


18. 오빠 2 라면요리사의 세계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어 실험정신이 투철하다. 잘 끓이는 것 맞겠지?


19. 오빠 2 : 물을 너무 많이 넣었어. ㅠㅠ


20. 오빠 1 : 볶아 계속.(계속 볶음.)


21. 오빠 2 : 불닭볶음탕면이 됐어.(이제는 계속 끓임.)



22. 오빠 1의 얼음 씹어 먹는 소리가 서걱서걱 계속 들림.


23. 아이 1 얼음 먹기에 합류.


24. 오빠 2 : 엄마 조금만 먹어주실 수 있어요? (남으면 그냥 버리삼.)


25. 오빠 2 : 먹을 수 있는 비주얼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데 왜 날 주냐.)



26. 오빠 2의 불닭볶음탕면은 바닥에 눌어붙는 것 같은 느낌. 깨를 조금 더 첨가. 리얼 참깨 라면으로 재탄생.


27. 오빠 2 계란프라이 시도. 노른자 터지자 스크램블로 메뉴 변경하는 기지를 발휘. 계란을 비빔. 계속 불에서 비빔. 중요한 것을 안 넣었다고 함.


28. 오빠 2 한참 후 소금 투하.


29. 오빠 2 계란프라이 다시 시도. 계란 하나를 더 꺼내옴. 큰 거를 떨어뜨림. 건진 후 기름을 많이 넣었다며 울상.


30. 오빠 2 : 계란 뒤집어야 해?(계란 프라이의 수난시대. 이번에 과연 소금의 운명은)


31. 아빠 등장. 불어 터진 스크램블 앤 참깨 불 닭볶음탕면 맛을 봄.


32. 오빠 2 요리를 마치고 20분 만에 드디어 등장해 한 젓가락 드심.


스크램블 & 참깨불닭볶음탕면 품평

계란 스크램블과 계란 프라이, 참깨가 매운맛을 잡아줌.

안 매움.

맵지 않으나 매움.

콜라와 함께 흡입.


33. 오빠 2 오른 눈 아래쪽 얼굴에 참깨 하나 붙었음.


34. 라면 맛을 본 아빠 만두를 구워달라 함.


35. 드디어 주방에 등장한 엄마, 전쟁터가 된 주방을 마주함. 난감함. 잠은 언제 자냐고.



그 환장의 날들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23년 7월의 어느 날 복이는 그렇게 라면 요리계에 입성했다. 라면에 계란 요리는 기본이고, 각종 조미료는 기분에 따라 넣는다. 설탕도 놀라운 일이지만 설탕이 뭔지 몰라 미원을 쏟아붓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치즈는 스스로 구매해 쟁여둔다. 체다치즈뿐만 아니라 쭉쭉 늘어나는 치즈도 사 온다. 다양한 치즈가 들어간 컵라면도 애정하는 메뉴다. 고기에 파절이도 척척 얹어먹는 어린이 이제는 국물에 파를 넣어 끓인다. 고추도 넣는다.


라면을 끓이는 건 설거지를 줄이고 간편하게 먹으려고 그런 거 하닌가? 길쭉한 손잡이 하나 달린 작은 냄비 하나면 족하는 나에게 온갖 기구들로 난장판이 된 주방을 맞는 건 심히 불편한 일이다. 라면폭탄을 맞은 주방의 처참함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어제는 학원 시간이 촉박해 다행히 계란프라이를 하려다 프라이팬만 꺼내놓고선 못해먹고 라면만 먹고 줄행랑을 쳤다. 보통은 그것이 저녁이 된다. 배가 콩알딱지만 해서 저녁을 못 먹는다면서 밥을 거부한다. 일찍 먹는 라면 저녁은 밤참을 부른다. 야채, 과일 안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복이에게 과일로 배가 찰리 없다. 배가 콩알딱지만 하기는 무슨 밥을 먹기 싫을 뿐이다. 편식쟁이 우리 복이는 고기, 소시지, 튀김을 좋아한다. 한 가지 반찬으로 밥을 뚝딱 먹고 엄마에게 한 소리 들을 새라 얼른 식판을 가져다 버린다. 손도 대지 않은 야채와 과일이 우수수 수채구멍으로 들어간다.


나도 편식쟁이였다. 고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안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았다. 닭을 삶아 먹을 때면 닭껍질을 발라 놓았다. 아버지가 먹고, 동생이 먹었다. 그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느냐며. 파, 마늘, 양파, 고추는 지금도 생것을 못 먹는다. 피망은 고춧과라 생각한다. 그래서 잘 안 먹는다. ‘못 먹는다’, ‘싫다’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먹을 때면 구역질이 올라온다. 약을 먹을 때 그랬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약을 봉지째 옷장에다 숨겨두곤 했다. 아무도 모르게.


먹는 게 싫으면 고역이다. 그걸 알기에 복이의 편식에 관대했다. 먹기 싫은 음식은 안 먹더라도 다른 것에서 영양소를 섭취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고기는 좀 덜 먹지만 야채도 잘 먹고 버섯의 식감도 알아가고 있다. 나물 맛도 식감도 좋아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바뀌는 식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나와 같지는 않았다.


세상에 매혹적이고 간편한 음식이 너무 많이 나왔다.


새로운 재료, 음식을 접해보기 전에 자극적인 재료와 음식을 먼저 만나게 된 복이. 씹기 귀찮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건 누구나 다 그렇다. 라면 맛을 너무 일찍 봤다. 너무 일찍 길들여졌다. 강력한 맛에 너무 일찍 익숙해져 버렸다.


편식쟁이에게 좀 더 일찍 잔소리를 할 것을 그랬다.


한 영양교육에서 편식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피망을 그릇으로 이용해 볶음밥을 만드는 거였다. 집에 와서 만든 피망 볶음밥은 대성공이었다. 피망향이 나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그릇 빼고는 다 먹었다. 교육에서 그랬다. 아이가 음식을 먹게 하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 기다림이란 9라는 숫자다.


아홉 번 아이의 그릇에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줘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식판 한쪽에 색감이 좋은 야채, 과일 한두 개를 버릴 생각을 하고 놓아두는 것이었다. 그 노력이 꾸준했다면 복이가 더 다양한 재료를 먹게 되었을까.


음식과 섞여있는 언 먹는 재료를 걷어내거나 골라내며 짜증스러운 소리를 하면 엄마의 편식 이야기를 해 주며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조용히 남기라고 이야기해 줬다. 복이는 조용히 걷어내고 골라내고 남기는데 도사가 되었다. 편법을 너무 일찍 전수해 줬다.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터득하는 것인데 미리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차단해 버리는 꼴이 됐다.


복이는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간다. 복어의 위와 장이 걱정된다.


불량주부의 노력은 그래서 계속되어야 한다. 라면과 함께 가야 한다면 건강한 라면을 먹이면 된다.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면 된다.


라면 한 젓가락에 김치를 더하고

라면 한 젓가락에 상추를 더하고

라면 한 젓가각에 파프리카를 더해

라면을 건강하게 먹었다.


복이에게도 라면을 건강하게 먹는 방법에 대해 슬쩍 조언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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