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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17. 2024

라면 구매 권한을 위임받았다

사리면, 컵라면 남은 것을 싹 먹어 없앴다.


남편은 라면을 안 사러 간다.


이제는 날 더러 사 오란다.


마트에 가는데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짜장 라면이 먹고 싶단다. 그러곤 사족을 붙인다. 자신은 매운 볶음면이 먹고 싶단다.


“라면을 한 달 끊어본다면서? 그냥 자기는 밥 먹어요.”


라면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너무 야멸차게 이야기했나? 아이들 짜파게티도 사지 말까 고민된다.


마트에 가서 라면부터 고른다. 내 새끼가 먹고 싶다는데. 이런 망할 엄마 같으니. 가족들에게 잔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라면 먹지 않을 의지를 스스로 가져야 했다. 남탓 하느라 스스로 라면을 사러 갈 것은 생각지 못했다. 불량주부는 라면을 안 좋아 한다고 자신만만했다. 밥이 한 그릇 모자라면 가족들 모두 밥을 먹고 나면 혼자 몰래 라면을 끓여 먹은 사람이 누구더라. 왜 밥은 꼭 한 그릇 모자라서 주부가 라면을 끓이게 하는 걸까?


결국 짜장라면 한 묶음을 샀다. 라면 코너를 돌아 나오는데 또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먹고 싶어.
먹고 싶어.
먹고 싶어.


귓가에 맴도는 그대의 목소리


불량주부는 마음이 약하다. 이건 남편의 계획적인 떠넘김이 분명하다. 라면 선택을 주부에게 떠넘기고 먹게 된다고 해도 자신은 사라고 한건 아니라고 발뺌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먹고 싶다는데. 라면 코너를 한번 더 돌아 대충 볶음 라면 하나를 골라 카트에 넣었다. 치즈 들어간 볶음 라면은 안 좋아하니까 엄청 매운 오리지널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하다. 나는 분명 오리지널 봉지로 골랐다. 깜장과 빨강의 조화가 분명한 오리지널.


앞으로는 절대 라면을 안 사기로 했다. 앞으로는 복실이가 먹고 싶다고 해도 절대 안 사기로 한다. 주부의 의지가 라면을 없앤다! 주부의 의지가 건강을 지킨다. 생각하라, 밥생각만!


라면을 간식으로 끓여 먹은 복이 빼고는 누구도 라면을 안 먹었다. 남편을 위해 고심하여 집어온 볶음탕은 또 뭐냐. 불량주부는 볶음면을 골라온 것인데 포장이 비슷하니 그것이 그것인 줄 알았다. 볶음탕면은 남편이 원한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안 먹어본 라면이다. 라면 끊기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건만 졸지에 새로운 라면을 선보인 불량주부.


다행히 남편은 라면을 먹지 않았다. 전화를 타고 흘러나오는 부인의 냉정한 말에 라면을 안 사온줄 알았단다. 탕면은 왜 사 왔냐고 한다.  


권한을 위임받으면 책임과 의무, 고생이 따른다. 정신도 똑바로 차리자. 볶음면과 볶음탕면을 엄연히 다르다. 볶음면이든 볶음탕면이든


이제는 절대로 사지 말자.


짜장라면 먹는 걸 그냥 두고 볼 복실이가 아니다. 아침으로 예약을 했다. 도장까지 꽝 찍었다.





아침 라면을 즐기는 복이 형제들 신났다. 복실이는 긴 머리 휘날리며 밥까지 알차게 비벼 먹는다. 어제 라면을 먹은 복이는 속이 안 좋아 아침 라면을 사양한다. 늘 그렇듯 모닝똥을 즐기고 있다. 길게~~. 형아와 아빠가 늦게 나온다며 버리고 먼저 간다. 아침에 짜장 라면을 끓여준 엄마가 죄인이다.


내 발등을 내가 찍고도 돌아서면 잊고 마는 어리석음 그게 인생인가 보다.


생각하라 밥생각만!
주부의 의지가 가족을 지킨다.


사진출처: 아침 밥으로 먹은 짜장라면 봉지를 찍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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