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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16. 2024

멀쩡한 요리 전골냄비 하나 가득

묵사발, 닭볶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을 딴 데 팔고 밥은 뒷전인 불량주부. 밥 절충안을 채택했다.  모두 완벽할 수는 없으니 마음으로부터 반쯤 내려놓은 것이다. 건강, 미안함, 의무, 버거움을 내려놓고 자유와 활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괄목할만한 성과가 있었으니 마트에 가면 잡곡에 손이 가는 것, 야채를 구비하는 것이다. 고기와 생선을 사면 고기에 손이 더 많이 가기는 하지만 생선도 냉장고에 구비해 둔다. 냉동식품은 마음이 든든하도록 쟁여둔다.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가공식품으로 좀 더 건강한 요리를 할 수 있다.


불량주부도 할 수 있다.
멀쩡한 요리를!


지성이면 감천이랬다. 불량주부가 드디어 여왕으로 등극했으니 요리의 여왕, 살림의 여왕도 아니고 꼼수의 여왕이다. 온갖 핑곗거리를 찾고 남 탓, 장비 탓을 해 보아도 마음에 차지 않고 현실은 늘 밥타령. 갖은 지혜를 짜내고 잔머리를 굴려 좋게 말하면 절충안, 나쁘게 말하면 꼼수를 부려본다. 그러니 꼼수의 여왕 되시겠다. 불량주부의 꼼수여왕 등극을 축하하며 그녀의 요리를 시연해 본다.




마트 즉석조리 코너에 묵사발이 있다. 일 년 365일  구비된 묵사발을 종종 사 먹는다. 그래 야채 듬뿍 묵사발을 해 먹는 거야. 마침 야채 장을 봐 왔고, 마침 어머님표 수제 도토리묵이 아들들 손에 배달되어 왔다. 오늘 점심은 야채 듬뿍 묵사발이다.



야채 듬뿍 묵사발 전골냄비 하나 가득


그릇은 작은 것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작은 것을 준비했다 넘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때면 난감하다. 그러니 불량주부는 오늘 좀 넉넉한 냄비를 준비했다. 커다랗고 넓적한 전골냄비. 그릇이 커지면 손이 더 커진다. 야채는 마음껏 듬뿍 넣는다. 사실 야채가 여러 가지라 조금씩 넣었지만 양이 자꾸 늘어만 간다. 하얀 양배추, 적양배추, 양파, 파 조금, 오이, 상추, 빨강 노랑 파프리카, 김치 조금, 도토리묵을 썰어서 담는다. 비법 국물을 부으면 끝! 얼음통에서 각얼음도 듬뿍 넣었다. 즉석조리코너에서 파는 맛이랑 똑같다.


No 양념! 비법은 차가운 냉면 육수다.


세 봉이나 넣었다. 자르기 귀찮아서 복이에게 시켰다. 옆에서 야채를 꺼내주는 것도 보조 요리사 복이었다.


더운 날 아이들은 냉면 같이 시원한 밥을 원했다. 냉면 맛 시원한 묵사발 성공이다. 하늘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국물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있는 야채를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할머니의 수제 도토리묵 때문인가 신기할세.


“엄마 묵 엄청 맛있어! “


복실이의 말에 힘이 난다.


“할머니한테 묵 엄청 맛있었다고 말씀드려.“


곧 할머니는 수제 도토리묵을 또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런데 복동이가 그런다. 제발 파프리카는 빼주세요. 전 파프리카를 안 먹어요! 어제 돼지고기 볶음에도 파프리카 넣은 거 알아요! 손이 안 가는 야채는 누구나 있다. 알아서 빼고 드시길.


커다란 전골냄비를 하나 다 비웠다.


왼쪽 : 즉석조리코너 묵사발, 오른쪽 : 야채듬뿍 엄마표 묵사발


야채 두 배 닭볶음 전골냄비 하나 가득


바쁜 평일 점심시간

뼈가 붙은 닭볶음탕용 닭은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니 자주 해 먹기 번거롭다. 닭정육을 이용해 조리시간을 단축했다.  닭정육도 밑간을 하니 번거로워 허브가 솔솔 뿌려진 팩을 이용해 봤는데 만족도가 높다. 한 팩에 든 고깃덩이는 2개. 여섯은 먹을 수 없고 둘이서 먹으면 딱 좋다. 가격은 치킨 시켜 먹는 게 더 경제적인 것 같다. 맛과 가격에서 밀리니 건강과 정성을 넣어야 하는데 넣을 건 야채뿐이고 시간은 늘 촉박하다. 바쁠 땐 팩에서 바로 팬으로 직행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다.


시간이 넉넉한 일요일 저녁이다.

볶아 먹으려고 닭다리살 600그램을 사 왔다. 무려 생닭이다.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닭이다. 닭볶음은 닭볶음탕 야채가 자연스럽게 준비된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왠지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다. 파, 마늘, 양파, 감자를 준비하고 닭갈비에 많이 들어가는 양배추도 한가득 준비한다. 간장, 고춧가루, 설탕 범벅 기본양념으로 한 솥에 넣고 끓인다. 다른 야채는 골라내도 감자는 인기가 있다. 감자는 야채가 아니라서 그런가. 올해 첫 수확한 기념으로 왕창 넣었다. 주먹만 한 감자 두 개. 빨간 파프리카도 반 개 큼지막하게 썰어 넣었다. 전골냄비 하나 가득이다. 물을 자박하게 넣고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범벅 양념을 넣고 끓인다.


한 냄비가 금세 없어진다. 먹는 양이 무섭다. 쌈 싸 먹고, 골라 먹고, 나중엔 야채 국물에 밥까지 비벼 먹는다.


남은 것은 커다란 파프리카 몇 조각.




요즘 파프리카가 싸다. 5개 3900원. 다 먹여야 한다. 불량주부도 싫어하는 파프리카. 다 먹어야 한다. 먹을 방도를 찾아 보아라.


야채가 풍성한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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