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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12. 2024

밥그릇을 샀다

신혼살림 장만 후 십여 년이 지나 처음으로 밥그릇을 샀다. 둘에서 여섯으로 사람이 늘어도 배 이상 늘었는데 그릇이 그대로였을까. 합가와 분가, 가게 살림 등으로 그릇, 반찬통, 접시, 냄비 등 내 것, 네 것 구분이 안 되는 살림살이가 뒤죽박죽이다. 주방에 정이 안 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신혼살림 밥그릇은 이가 나가 하나 남은 것이 전부이고, 돌잔치며 생일 상을 차리던 커다랗고 다양한 접시들은 쓰임을 잃은 지 한참이다. 주방 수납장 구석 어딘가에 소리 없이 숨어있다.


합가 하여 어머님 신혼 때 장만해 온 그릇을 물려받았다. 엔틱한 총 천연색 꽃무늬 그릇은 오래되어도 얼마나 튼튼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 마저도 밥그릇과 국그릇 짝이 안 맞는다. 두 벌 남았나?  그릇에 대한 애정이 없기도 하지만 내돈내산이 아니어서 그런가 정이 붙질 않았다. 밥그릇 정으로 밥을 먹나 쓸데없기는.


엔틱 밥 그릇


냄비는 크기 별로 하나씩 구비해 놓고 알뜰살뜰히 살림했었다. 합가 후 같은 종류 냄비가 계속 늘었다. 내 살림이 아닌 그릇들과 냄비들.


냄비는 자주 태워먹으니 스텐으로만 쓴다. 자주 태워먹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다.  그런데 스텐을 좋아하는 분이 또 계셨으니 프라이팬과 도마까지 싹 스텐으로 바꾸셨다. 그리고 우리도 스텐 프라이팬을 장만해 주셨다. 무려 3종 세트. 그 무렵  손목이 아파 병원을 오갔다. 스텐 프라이팬은 무거워서 못쓰겠다며 투정을 부렸다. 계란 프라이를 하는데도 인내심이 필요한 스텐 프라이팬 대신 코팅 팬을 고집했다.


늘어난 집안 살림살이가 감당이 안 되는 와중에 캠핑과 더불어 인터넷 쇼핑에 눈을 뜬 남편님 프라이팬을 종류별로 구매하기 시작하셨다. 또 한다면 하는 남편님 프라이팬만 샀을까. 고기 굽는 무쇠 뚜껑부터 쇠사슬이 달린 전골냄비, 캠핑 냄비며 다양한 그릇이 줄줄이 살림살이로 합류했다. 물통은 왜 크기와 종류가 그리도 많은 것인지 주방 수납장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복병이 하나 더 늘었으니 요리를 시작한 사춘기 소년들이다. 주방의 최고 강적이다. 늘어놓고 치우지 않으며 라면 부스러기와 빨간 가루를 솔솔 뿌려놓고 도망간다. 일말의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내가 뿌린 씨앗이요.’ 인내할 뿐이다.


주방은 주부의 전용 공간인 줄 알았다. 내가 지휘하는 고유의 공간인 줄 알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엔 불이 걱정되어 사용을 못했지 이제 크고 보니 그들도 요리할 공간이 필요하고 음식을 저장할 냉장고가 필요하다. 한 여름 주부보다 더 자주 얼음통을 채우고 아이스크림을 꺼낸다. 커갈수록 아이들은 주방 더 깊숙한 곳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주방은 주부의 전용 공간이 아니다.


그릇에 대한 하소연으로 시작한 글은 주방이 가족 모두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끌어냈다. 글이란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가 보다.  



 마음속으로 주방은 내 영역이라는 영역 표시를 해 두고 누가 침범할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리 가라고 외쳤다. 마음속으로만 외치고 내뱉지 못한 말들은 설거지하는 개수대에서 늘 애환 어린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콸콸 차디찬 물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주체가 되어 살림을 해간다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그와 싸워야 한다.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인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분가하여 내 살림살이이니 알뜰살뜰 혼자 잘하고 살 줄 알았다. 그러나 반찬통, 김치통을 매일 차로 실어 나른다. 그릇들은 시댁과 집, 가게 냉장고와 수납장까지 들락날락한다. 냄비째 국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음식도 옷가지도 마찬가지다. 늘 불만이지만 이제는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그렇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간다.


불량 주부가 된 것은 독립된 공간의 부재 탓이라 우겨 보려다 또 안되니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밥그릇 탓을 해본다. 집에서 우아하게 밥그릇에 담아 먹을 테다. 우리는 여섯 식구 모두 어린이 철 식판을 이용한다. 안 되면 조상 탓도 해보고,  선무당 장구도 나무라 본다. 그러다 제 부족한 부분이 보이겠지.




변화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숟가락, 국자 하나 새로 장만할 생각이 없던 불량 주부 밥그릇을 샀다. 새로운 그릇에 가족의 건강을 담으면 좋겠다.


변화는 주부의 글에서 또 시작된다. ‘밥그릇을 샀다’라는 커다란 제목을 본 남편님 라면을 끊어 보겠다고 한다. 가게에 사다 놓은 컵라면만 다 먹고 한 달을 끊어보기로 했다. 지금 배가 고프다는데 하나만 같이 먹자고 한다. 오늘은 참깨라면.


변화는 느리지만 시작되었다.


술도 담배도 끊은 독한 남편이 한 달이지만 라면을 끊어보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저력을 믿어본다. 당신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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