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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09. 2024

불량주부의 변명

부족하지만 만족

일하는 엄마는 주말에 쉬고 싶다. 한 주의 피로는 잠으로! 그러나 시간이 넉넉한 주말에는 가족들에게 근사한 요리라는 걸 해서 먹이고도 싶다. 주말은 왠지 제대로 챙겨 먹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요상한 마음이 이것저것을 한꺼번에 하고 싶으니 늘 말썽이다. 자고도 싶고 먹이고도 싶고. 음식은 하고 싶으나 설거지는 귀찮고. 꿈속에서 요리를 하고 먹이면 딱 좋겠는데...


아침 글쓰기를 하고 아침밥을 하기 전 잠시 생각해 본다. 잘까 밥을 할까. 일요일 새벽까지 게임을 했을 다른 가족들은 늦게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잘까 말까. 때마침 일어난 복실이와 아침부터 마트행을 택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었다. 평일 아침에는 간편식으로 빠르게 먹고 나가니 일요일이면 식재료가 부실하다. 뭘 차리려고 해도 조합이 안 된다. 일요일 하루만 멀쩡한 밥을 해 먹으니 그렇다. 토요일에 미리 장을 좀 봐두면 좋았을 텐데 토요일에는 왜 그 생각이 안 나는 걸까. 그래도 일요일 아침잠을 택하지 않고 마트행을 택한 것에 칭찬을 해본다.


일요일 아침 마트는 한산하다. 문을 열자마자 도착한 마트는 물건 채워놓느라 분주하다. 야채식 퍼즐 맞추기를 하느라 며칠 고생을 한 것을 생각해 오늘은 고기, 생선, 간편 냉동식, 어묵을 샀다. 반찬 하나로 먹을 수 있는 이런 메인 반찬이 될 만한 재료를 구비해야 한다. 밥 생각에 힘이 들어 밥 할 의지를 잃거나, 도시락을 찾거나, 시켜 먹거나, 라면을 먹을 바에야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 좋은 음식만 먹고살 수 없다. 나쁜 음식도 먹어야 한다.


굶길 것인가. 나쁜 음식을 먹을 것인가. 좋은 음식만 고집하다 음식을 하지도 않는데 밥 하기 번아웃이 올 것 같았다.


사실 지난번 야채 장보기를 한 이후 마트에 가지 않았다. 갈 생각이 안 들었다. 남편이 마트에 가서 라면 대신 컵라면을 사 오기 시작했고 저녁이 되면 도시락을 먹었다. 요즘 오후 간식을 먹는 날이 많아서 저녁엔 배가 부르다는 핑계로 또 간단하게 컵라면을 먹었다. 마트에 가도 반찬 만들어낼 근심이 생기니 가기가 귀찮았을까. 책을 펴고 앉아, 때로는 글쓰기를 한다며 마트행을 피했다.


복실이와 마트행. 소시지랑 라면 빼고 다 사! 간편하게 데워만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도 2개나 골랐다. 치킨너겟과 함박스테이크. 크크크. 20리터 재활용 봉투 두 개를 먹거리로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거하게 해 먹고 설거지는 물만 담가 놓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만 잔다는 것이 수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점심을 건너뛰었다. 방바닥이 몸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잠의 수렁을 겨우 빠져나왔다. 남편은 밭일을 하다 배가 고팠는지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했다.(남편은 요즘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라면 구매를 끊었다. 대신 컵라면을 종류별로 사 온다. 육개장. 불닭, 참깨, 불닭, 간짬뽕. 어떤 것은 컵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 신기한 라면의 세계) 아이들은 정신없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으로 굴러다니는 바나나를 하나씩 먹였다.


불량 주부는 생각했다. 컵라면보다 더 간편한 음식이 필요하다. 일요일엔 아이들도 스스로 챙겨 먹을 수 있는 빵을 준비해 놔야겠다.


저녁은 시골 밥상 고기파티. 마당으로 이것저것 날라야 해서 좀 번거롭지만 반찬을 따로 안 해도 되니 참 좋다. 가족들 만족도가 최상이다. 일요일에는 매일 고기 파티 어때?


손 안 대고 코 풀기. 불량주부의 주말 요리는  야심 차게 시작했으나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잘 쉬었으니 되었고 가족들 모두 잘 먹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잠 몰아 자기가 가장 큰 만족!! 불량주부도 쉼이 필요하다.


부족하지만 만족


나를 옭아매는 밥은 안 된다. 할 수 있는 만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불량주부는 절충안을 택하기로 했다. 간편 냉동식 다시 추가! 주부도 가족도 행복한 식사를 위해!  


바람 앞에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다음 고기 파티에는 소시지를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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