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랑크 소시지 김밥
찬찬히 불량 주부에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돌아오는 것이 아이들의 방학이다. 일을 하거나 안 해도, 책을 읽든 안 읽든, 살림의 잘함과 못함을 떠나 찾아온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날들. 학생이 학습을 왜 쉬어야 하는지, 그 재미난 것을 잠시라도 왜 놓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정해진 규칙이라니 따를 수밖에. 불량 주부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 강제 탈출의 시간이다.
나는 그냥 쭈욱 불량 주부이고 싶소!
다 큰 아이들의 육아 아닌 육아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어린이의 육아라고 별 다를 것이 없다. 청소년 어린이는 좀 몸집이 크고 자신의 말을 좀 더 강력하게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분신술을 펼쳐 주부와 엄마를 둘씩 더 만들어 활용하면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시간이 약이다. 즐기고 즐기자.
했건만...
고무장갑이 안 벗겨진다. 물도 안 들어갔는데 후끈한 물로 설거지를 하면 더 안 벗겨진다. 더운물로 설거지를 해서라기보다 손이랑 고무장갑 안에 습기가 그득해서 그렇다. 급기야 질긴 고무가 말을 안 듣자 장갑을 뒤집어 벗으며 싱크대에 패대기를 쳤다.
던지고 달린다.
바쁘다 바쁘다 하면 더 바쁘다. 없던 일도 마구 생긴다. 손 안 가는 중학생 둘이 방학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바쁠 수가. 점심에 숟가락 두 개 더 올리면 그만인데 아이들의 존재감은 크다. 이번 주 방학을 하는 초등 둘이 합세하면 볼만한 점심시간이 될 터이다. 미리 중압감을 느끼며 고무장갑이 말썽이다. 습기가 많아서 그렇다. 좁은 주방에 음식 냄새 빠지라고 환풍기를 틀어서 더 그렇다. 눅눅하고 뜨거운 공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방학의 시작이다. 방학이면 늘어지는 아이들을 아침에 모두 챙겨 나와야 하고, 밤이면 얼른 자라고 독려를 해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아이들이 방학이라 엄마의 마음이 헤이해 진다는 것이다. 출근을 제시간에 해야 장사 준비를 해 놓고 점심밥을 제때 해 먹을 텐데, 요 며칠 더욱 넉넉해진 마음 덕분에 꼬마들은 매일 지각이고 남편은 점심때를 놓치기 일쑤였다. 방학일수록 제시간에 자고 일찍 일어나자.
남편과 둘이라면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때워도 되는데 여럿이면 무조건 밥을 해야 한다. 마트가 가까운 것에 감사를! 며칠 마트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장 보는데 선뜻 손이 가는 것이 없다. 한 번씩 쭉 돌아온 반찬들, 가공식품들, 야채들. 뭘 집어 들어야 할까.
밥은 반복에 반복이다. 그러나 메뉴가 반복되면 먹지를 않는다. 요상한 입과 손이 거부한다. 호박이 주렁주렁 열려 매일 끓이는 호박 된장국. 이제는 손을 안 대길래 버섯도 넣어보고 두부도 넣어보아도 많이 남는다. 된장이 맛이 없나? 조리법이 영 꽝인가. 지난번 언니가 만들어준 강된장은 다들 비벼먹고 쌈 싸 먹고 맛있다고 했는데 역시 장이 문제인가 보다. 장은 어찌할 수 없는데... 맛난 장을 사야 할까.
최대한 반복을 피하며 식구들의 입맛에 맞는 반찬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불량주부. 입맛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남으면 기분이 안 좋다. 내 노력의 시간들이 쓰레기 봉지에 들어가게 되니 그렇다. 음식쓰레기 처리가 귀찮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있는 레시피 없는 레시피, 배우고 보고 듣고 입수한 레시피를 모아 모아 돌려가며 요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방학이다. 내일부터 모두의 방학이 시작된다.
물러설 곳이 없다.
밥시간을 맞추기 위해 1시간 혹은 30분 전부터 반찬을 하라고 몸을 끌고 간다. 뒷걸음질 쳐봐야 밥시간만 늦출 뿐이다. 좋은 시절이 다 갔다. 시간만 축내며 카운터에 앉아 있다 마트에 가서 도시락 하나 사 올 수 있는 찬스도 이제는 물 건너갔다. 6인 식사는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으로 감당이 안 된다. 한 끼 정도야 봐줄 수 있지만 아주 급박한 상황을 위해 아껴둬야 한다.
매일 먹어도 맛있는 요리는 어디 없나?
있다. 매일 먹어도 좋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인증해 준 김밥. 후랑크 소시지 김밥이다. 핫도그용 소시지 크기의 후랑크 소시지가 주 재료다. 20분 차를 타고 옆 동네 마트에 가서 사 온다. 우리가 넣는 소시지의 총량은 1킬로그램, 삼시세끼 김밥을 싸 먹어도 되는 양이다.
김밥으로 탑을 쌓았다. 김밥 꼬다리로 산을 만들었다. 김밥이 한 무더기. 두 무더기. 김밥으로 이틀 배를 채웠다. 그건 다 후랑크 소시지 덕분이다. 1킬로그램은 6인 가족이 먹기에도 양이 많다. 그래도 매일 먹고 싶다는 소시지 김밥.
후랑크 소시지 김밥의 요리팁!
김을 소시지 크기에 맞춰 반으로 자른다.
모든 재료의 길이를 반으로 자른다.
방학을 맞아 강제로 불량 주부에서 퇴출된 그녀 잘할 수 있을까. 이제 아름다운 밥 하기의 시간이다. 매일 먹어도 맛있는 또 다른 밥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려 본다.
주부는 늘 바쁘고 힘들다. 그러나 엄마는 강하다. 뭔 말인지. ㅎㅎ 분신술을 펼칠 시간이다. 준비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