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미역국 끓이는 날, 첫째의 생일이었다. 첫아이의 생일은 나에게 조금 특별하다. 엄마라는 한 인간에게 누구나 특별한 날일지도 모른다.
첫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은 내가 중심이던 세상에서 타인에게로 삶의 중심이 옮겨가는 생의 전환점이었다. 열 달을 품으며 아이의 탄생을 준비하는 줄 알았다. 열심히 육아 용품을 구경하고 사들였다. 그건 아기 용품을 사라는 열 달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안다. 물건을 준비하며 차근히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엄마가 될 준비만이 필요한 게 아니었음을 안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 삶은 변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닌 수유를 위해 먹었다. 옆에서도 수유를 위해 챙겨주는 몸에 좋은 음식이 생소하기만 했다. 왜 나를 위해 먹으라고 하지 않고 아이를 위해 먹으라고 하는 걸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고 서운했다. 옷도 아이를 안아야 해서 부들부들하면서도 축축 늘어지는 면으로 입었다. 칙칙한 옷을 벗어버리고 아이에게 색감을 키워주고자 하는 깊은 생각으로 알록이 달록이 옷을 입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초점책이 되었다. 태어난 아이와 독서를 시작했다. 달님과 까꿍이가 나오는 책이었다. 아이를 위해 아기 노래를 함께 들었다. 낮잠시간도 아이의 낮잠 시간에 맞췄다. 밤잠은 당연히 아이와 함께 자고 일어났다. 그렇게 1년은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2, 3년을 간격으로 아이 셋을 더 출산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출산과 양육을 반복하면서 나는 그 시간들에게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생각도 안 나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을까. 허공에서 흩어져 과거의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 내 젊은 날, 30대 청춘의 시절들. 그 아쉬운 시간들의 시작점이 첫아이의 탄생일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다. 이제는 20대 중반인 조카에게는 고등학생 때부터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한다. 사람이 계획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중 가족계획은 꼭 세워야 한다.
아이의 생일 전날 마른미역을 물에 담가 놓았다. 물에 불린 미역은 바다내음을 품고 있다. 태초의 바다. 엄마의 자궁과 같은 물의 공간. 짭조름한 그곳의 향을 가진 초록 풀에 소금을 더해 치대어 씻었다. 세찬 물샤워를 시켜가며 그리운 바다의 한터럭 미련 까지도 말끔히 헹구어 낸다. 하늘거리며 풀어진 초록 이파리의 하늘거림은 물을 버리자 쪼그라든다. 짠내를 씻어내며 태초의 물맛을 잃어가는 미역. 소금을 씻어 버린 물에 다시 소금을 넣고 국간장을 넣고 새로이 바다의 맛을 입힌다. 그건 이제 바다내음이 아니라 엄마의 손맛이다. 엄마의 국물맛이 우러날 때까지 푹 끓인다. 끓이려면 항상 없는 것은 냄비다.
큰 냄비가 없어 가게에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남편은 인덕션용이 아닌 냄비를 가지고 왔다. 스스로 챙길 것이지 왜 매번 잊어버려서 남편에게 냄비를 실어오라고 난리인지. 전기레인지 불을 붙이지 못하는 냄비는 어머님 냄비다. 지난번 무슨 찜을 해서 가져다주셨는데... 역시나 남편은 우리 냄비와 어머님 냄비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이의 눈에는 그 냄비가 그 냄비로 보이나 보다. 스텐이나 스텐이 아닌 끓일 수 없는 냄비. 왜 스텐의 모습을 하고 인덕션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역국을 넣고 끓이려고 미역을 넣고 기름을 붓고 간을 하고 불을 켰는데 소식이 없다. 내가 안 켰나? 역시나 소식이 없다.
즈은하! 저에게는 아직도 작은 냄비와 낮은 냄비가 있사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긍정 마인드 작동의 시간이다. 새벽잠을 자는 남편을 깨워 잔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골냄비 두 개를 꺼내 우선 하나에 미역을 붓고 볶는다. 물을 자작하게 넣고 강불로 끓인다. 보글보글 끓으면 줄인다. 대충 국물이 우러났다. 아침 먹을 것만 덜어 다른 하나의 전골냄비에 물을 붓고 끓인다. 오호, 시간 절약도 되고 참 좋은 방법이다. 미역국은 자고로 큰 냄비에 많이 끓여야 진한 국물이 우러나고 맛있는데 큰 냄비라고는 전골냄비 두 개가 전부라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큰 냄비와 냄비 뚜껑 크기는 같다. 그게 어딘가. 큰 냄비를 높이를 3등분 한 것 같은 느낌의 낮은 냄비, 두 개가 있어 참 다행이다. 끓어 넘치지 않도록 미역 건더기를 조금만 넣고 낮은 불로 오래 끓였다. 맛이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으나 먹을만하였다.
깍두기와 함께 맛나게 먹었다. 밥과 깍두기 반찬, 미역국이 전부이지만 남편까지 불러 모아 오랜만에 온 가족 아침을 먹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아침을 먹으니 이상하게 쳐다본다. 심지어 엄마 숟가락은 안 놓는다.
생일날 미역국도 끓여주는 나는 불량주부다. 냄비째 태워버린 날도 있었고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 안 끓여준 날도 있었다. 어찌어찌 끓였으니 오늘은 성공이 맞다.
아이들이 크면서 자연스레 스스로 나를 보는 시선이 늘어간다. 아이만 아니라 내 모습도 차츰 보인다. 다시 타인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생일날 미역국 하나에 밥을 말아먹으면서도 아이에게 생일축하한다고 멋지게 말해줬다. 내 시간에 충실하고자 미역국만 겨우 끓여주었다. 미역국을 올려놓고 열심히 책을 읽은 미안함, 사실 좀 미안해야 하는데 그것도 차츰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엄마는 엄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미역국을 끓였단다. 점심과 저녁에 맛난 것 먹자 생각했다.
아이의 탄생으로 엄마가 되었다. 나는 계속 나였는데 엄마가 되고서 ‘나’라는 존재를 잊고 있었다. 아이 키우느라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그것에 너무 길들여져서....
아이를 품는 열 달은 엄마가 될 ‘나’를 위한 시간이다. 십 수년 나를 잘 지키기 위한 준비를 하라고 준 열 달이 아니었을까. 나는 주부이고, 엄마이다. 그리고 나다. 불량 주부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어쩌면 온전한 나를 찾는 것이 아닐까.
집에서 엄마표로 돌상을 똑 부러지게 차려 어른들을 대접했던 날들도 있었는데 미역국 한 그릇으로 많이도 초라해진 생일상이다.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며 매년 미역국을 끓였다. 하지만 미역국만 끓인 아침은 처음이다. 이제 주부는 미역국 한 그릇에 감사할 줄 안다. 미역국을 불에 올려두고, 밥은 취사를 눌렀다. 나는 밥솥을 눈높이에 둔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밥솥과 나의 거리 60센티미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주방에서 시작된다. 불량 주부의 탈출도 이곳에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