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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l 14. 2024

불량 주부 노력하였으나

초록 국물 등갈비찜

불량 주부는 아팠다. 심장이 뛰었다. 복실이는 그런다. 심장이 뛰어야지. 그래야 살아 있는 거야.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너무 많이 뛰는걸. 심박수가 200을 넘어가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입안 구석구석 목에서부터 역한 가스 내가 올라오는 것 같다. 구토감.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러면 누워서 지낸다. 밤사이 고생하고 아침엔 안 될 것 같아 약을 먹었다. 운전을 할 수 없어 차 하나를 타고 출근이다. 출근해서 2시간을 내리 잤다. 그러고 맥박이 정상을 찾았다. 불량 주부는 부정맥이 있다. 반나절 고생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는 이상한 병이다.


아침은 레토르트 식품으로 대체, 점심은 도시락으로 대체했다. 오후 시간을 넘기며 힘이 없는 아내를 위해 혹은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남편은 행동을 개시했다. 마트행을 결행하며 20리터 재활용 봉투 가득 기쁨을 담아 왔다. 짜장라면, 비빔면, 주황색 국물라면, 빨간색 국물라면, 새우가 든 작은 컵라면, 매운 컵라면. 과자 몇 봉지까지 담아 20리터 봉지가 차고 넘쳐 컵라면 두 박스는 따로 옆구리에 끼고 왔다. 그동안 구매를 못한 한을 푸는 것인가. 못 말리는 라면 사랑이다. 그리하여 주부에게는 말도 않고 조용히 물을 끓여 가더니 매운 국물 작은 컵에 물을 하나 부어 먹고선 자신은 저녁은 안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한다. 안 먹어도 될 것 같기는 차리면 또 먹을 거면서. 뛰는 심장은 가라앉았지만 움직일 힘이 없어 밥을 하려다 김밥을 주문했다. 남편은 김밥 한 줄에 과일 조금, 다른 식구들은 컵라면에 김밥을 먹었다.


아프니까 라면도 김밥도 간편식과 도시락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 모두 고마울 뿐이다.




고마움은


한낱 꿈일 뿐


좁은 공간에 있으면 감각과 생각이 더 발달하게 된다.


나는 미래의 파티터, 게이머, 유튜버를 키우는 마더.


토요일 아이들의 일과는 참으로 가관이다.


10시에 아침밥을 먹고

가게 와서 게임을 하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피시방으로 출동한다.

피시방으로 못 가는 어린이도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본다.

종일하고

종일 본다.


4인 식탁에 4인조 게이머

오밀조밀 앉아 게임을 하는 그들

옆에서 밥을 하는 엄마는 마음이 착잡하다.

그들의 미래보다 지금 내 현실이 참담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밥을 하는 것인가.

4인조 게임단을 위해

열심히 밥을 했건만...


막내 복실이는 배가 아파 밥을 못 먹는다 떼굴떼굴 구른다.

복이는 밥을 먹고 바로 자전거를 타러 간다고 하다 잡혔다.

복동이는 밥을 천천히 먹는 달복이를 쪼고 있었다.

달복이는 카레는 별로이며 콩밥 속 콩도 싫다고 했다.

일은 바쁘고

아직 4학년인 어린이의 밥 시중을 들고 있는 내 신세가 통탄스럽다.

심장이 부르짖는다.


밥을 먹고 4인조 게임단이 와해되며 각자의 길로 가니 좀 살만했다.


일요일은 한 명 추가

5인조 게임단이 완성된다.  

그나마 집은 공간이 넓어 다행이다.

그러나 뵈기 싫은 건 매한가지다.

5인조를 닦달해 셋을 모시고 마트에 다녀왔다.

먹을 것을 20리터 봉투 세 개에 나누어 담아 왔다.


주부의 역할은 주말에 빛을 발한다.

오랜만에 요리를 해 볼까.

막김치도 담으며 금방 먹을 겉절이를 했다.


오랜만에 만드는 등갈비찜은 파를 많이 넣어서 인지 정체불명의 초록 국물 안에서 끓고 있다.

이상한 초록 국물을 본 가족들 빨강 겉절이에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한다.

아니야. 맛은 괜찮을걸?



불량 주부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살림을 완벽하게 해내는 방법이 있다. 그건 이루기 힘들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정신 건강도 체력도 모두 받쳐주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완벽한 주부가 되기 전에 건강이 먼저다.


음식의 맛이나 비주얼도 완벽한 주부 보다 더 높은 가치인 것 같다.

그래서 온 가족이 라면을 좋아하는 건가?

초록 국물은 열심히 끓고 있다.

아무리 끓여도 초록 빛깔이 가시지 않는다.

남편은 맛만 좋으면 된다고 하는데...

맛이 좋을지 장담할 수 없다.

온갖 야채를 다 갈아 넣었는데 조합이 안 좋은 것일까.

레시피를 보고 할 것을...


등갈비 찜 맞음. 초록 색깔이 변치 않음. 초벌 아님. 야채는 고기 아래에서 끓고 있음.


불량 주부가 오랜만에 야침 차게 준비한  요리가 맛있는 색깔로 변하기를 바라본다.

야채를 썰어서 더 넣어볼까.

고춧가루를 그냥 풀어 버릴까...


역시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색깔이 이쁘다.

겉절이는 색감이 살아있다.

등갈비는 아무리 끓여도 진한 초록색으로 변할 뿐이다.

고춧가루를 풀어야 겠다.

살아나라 살아나라 소심하게 빨강 가루를 한 숟가락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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