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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l 07. 2024

청소기 없는 하늘 아래

청소기가 고장 났다. 고장이야 흔한 일이다. 그저 마냥 밀고 돌리기만 하는 불량 주부. 청소기 흡입구 앞에 장애물이 있든 말든 밀고 본다. 배터리 충천만은 완벽하게 하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다행히 거치대가 튼튼해 잘 걸려 있다.


며칠 청소기 버튼을 누르면 돌다 말다 돌다 말다 했다. 배터리가 문제군. 충전을 했다. 다음날 버튼을 눌렀으나 돌다 말다 했다. 충전 거치대에 잘못 올려뒀나? 이번에는 거치대에 정확하게 끼웠다. 확인 완료! 엊저녁 청소기를 돌렸지만 이 녀석 이제는 아예 돌지 않는다. 배터리는 파랑 불이 가득 찬다. 가득이다. 충전기가 고장인가? 청소기를 돌릴 줄만 알지 녀석을 알지 못하는 불량주부는 충전 탓만 한다.


남편에게 청소기 상태를 알렸다. 집안일의 완벽한 2권 분립 원칙을 고수하는 우리. 사용은 불량주부 관리는 남편 담당이다. 남편은 청소기를 두 개로 분리한다. 청소기 봉과 헤드, 본체를 분리하고 먼지통부터 비운다. 가득 찬 먼지통을 보니 먼지를 안 비워서 고장이 난 건가 싶었다. 이런 미리미리 비울 것을.


먼지통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너른 책상으로 데리고 가는 남편. 이제 청소기 분해 시작이다. 책상 위에는 드라이버, 전동 드라이버가 줄줄이 올라온다. 그의 창고는 밖에 있는데도 거실 책상에서 간단하게 청소기 분해가 끝난다. 트리거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버튼이 안 눌러지는 거라며 부품을 시키면 며칠 걸리는데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럼 청소기 며칠 안 돌리는 것쯤이야.’


다행히 먼지통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관리 부실 문제에서 벗어나 다행인 불량주부. 며칠 청소에서 해방인가?


일요일 아침이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느지막이 아침을 차려주고 불량주부는 아이들 밥 다 먹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커피, 아빠도 커피.”


복이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이제는 제법 물도 잘 끓이고 물도 잘 붓는다. 드립백에 물 붓는 게 뭐가 어렵냐고 하겠지만 드립백에도 물의 양과 물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불량주부가 하면 얼른 먹을 수 있지만 커피는 누가 내려줘야 맛이다.


“복아 엄마 커피 줘.”


우리 복이 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나오질 않는다. 보글보글 다 끓었다고 딸깍 스위치 올라가는 소리가 나는데도 복이가 움직이지 않는다.


“복아 물 다 끓었어. “


물이 한참 식은 다음에 주방으로 나온 아이는 다시 전기 포트 스위치를 누르고 컵을 준비한다.


드립백 종이를 뜯고 붓는다. 라면 생각이 너무 났나 보다. 라면 스프인 줄 알았단다. 그냥 물 부어서 먹으면 안 되냐는 아이.


”컵째로 그냥 밀어 두고 다른 컵에 내려줘.”

‘인마!’


친절한 엄마씨는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내 아들이 나를 닮지 누구를 닮겠는가. 화수집을 많이 해서 나를 똑 닮은 내 아들을 보며 허허 웃고 말았다. 나도 어제 수제 시럽 한 병은 엎질러 깨뜨렸고, 엊그제는 우유 한 통을 바닥에 엎지르지 않았던가. 그래 한 번쯤 그럴 수도 있지.


두 번째 봉지를 뜯는 줄 알았다. 그 녀석은 라면 스프를 흔들듯 드립백 흰색 내지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더니 휙 날려 보낸다. 갈색 고운 가루를 가득 채운 드립백 필터가 양쪽 날개를 달고 휙 나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고운 바닥에 흩뿌려진 커핏가루.


“엄마 좀 연하게 드셔보는게 어때요?“


커피 가루 반을 쏟아낸 여과지를 주워와 머그컵에 날개를 끼우는 복이 녀석.


“아니 오늘은 아주 찐하게 먹을 거야. 새 걸로 내려줘.”


싱크대에 가루를 붓는 걸 옆으로 또 밀어두라고 했다. 사고뭉치 같으니. 바닥은 네가 치우렴. ㅋㅋㅋ


“복아 청소기가 고장 났어. 바닥을 잘 치워봐.”


청소기가 없는 하늘 아래 살아본 적 없는 아이는 청소기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청소기를 대신해 옛날에 썼던 실내용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있을 리가. 뭐든 잘 흘리고 쏟아서 치우는데 일가견이 있으니 잘 해결하리라 믿으며 아이의 건투를 빌어줬다.


첫째, 손으로 가루를 모아 본다.

둘째, 휴지를 이용한다.

셋째, 물티슈를 이용한다.


그래도 사방으로 흩어진 가루가 처리가 안 된다. 아이는 비장의 무기를 가져온다. 물걸레를 가져와 닦겠지 싶었지만 물걸레라는 것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아이.



넷째, 양면테이프를 가져와 말끔히 없앤다.


머리가 수두룩하게 빠지는 엄마를 위해 헤어드라이기 옆에 커다란 양면테이프가 구비되어 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양면테이프로 치우는 것을 자주 본 복이가 선택한 청소 도구는 대형 양면테이프였다.


커핏가루는 정리되었다. 커피도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는 복동이에게 커피를 타 달라고 해야겠다. 많이 번잡하다. 싱크대 위에 복이 그 녀석이 남기고 간 흔적이 가득하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청소를 잘 하자.

청소기를 고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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