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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l 03. 2024

밥보다 중한 것


“아이고 다리야, 허리야,  

아이고 손마디 관절이야~“


가게 일이 많아질 때면 내는 소리다.


“아이고 목이야~~ ”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내는 소리다. 요즘 불량주부가 속으로 내는 소리다. 목이 아프다고 하면 남편이 한 소리 할 것이 뻔하다. 책 좀 그만 봐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보니 밤엔 그냥 자라. 그 말이 싫어서 목이 아프다는 소리는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알아서 며칠 고생한다.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스트레칭하면서 멀쩡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말한다.


“아이고 삭신이 다 쑤시네~~ “


잠자리가 편치 않다.


머리만 대면 잘 자는 잠보였는데 -그건 그러니까 10대 20의 이야기다 - 아줌마가 되면서 잠보의 일상이 달라졌다. 자다 깨다는 늘 일상이니 그려려니 한다. 아이들 아기 때부터 시작된 잠버릇.  귀 옆에 더듬이 하나는 더 달린 것 같은 섬세함을 하나 장착했다. 아이들이 이불을 차내면 자다가도 눈을 감고도 기민하게 그 기척을 알아채는 놀라운 능력. 어둠의 틈새를 가르는 엄마의 손길은 그것이 이불인지 아이의 뱃살인지 궁둥이 인지 다 인지해내 포근한 이불을 아이의 몸에 착 감기게 해 준다. 그것은 어머니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데 나는 아이 넷을 줄줄이 낳고 아직까지 여덟 살인 막내를 옆에 끼고 자느라 장장 15년을 이러한 고도의 능력자로 살고 있다.


배를 드러내놓고 자면 바로 배가 아프고 바로 감기에 걸리던 아이들 아기 시절이 있었다. 아이 콧구멍이 작을 때는 코도 자주 막혀서 콧물감기라도 한 명씩 돌아가며 걸리면 잠을 영 못 잤다. 코 막힌 아이는 쿨쿨 자는데 엄마는 저 좁은 코가 막히면 어쩌나 노심초사였다.


밤잠을 못 자고 늘 평상시 비몽사몽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사를!


이제 아이들은 콧구멍도 넓어지고 차낸 이불만 가끔 덮어주는 정도라 대체로 푹 잔다.


대체로 그랬다. 그래서 겸사겸사 시작한 것이 모닝루틴 만들기였다. 대체로 잘 자서. 간혹 깨버려서. 새벽에도 깨기를 잘하니 아침을 좀 일찍 시작하자 생각하며 아침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이 1년 전이다. 누구와 같이, 어디 나가서, 독서 모임을 할 수 없었다. 아직 어린아이가 있어서 그랬다. 처음 새벽 기상을 할 때 막내 복실이가 얼마나 엄마를 찾았는지 모른다. 아기들은 등에 머리에 센서가 달렸다는데, 복실이는 엄마가 있던 옆자리가 비면 귀신같이 알아챘다. 엄마 쪽으로 굴러 굴러가다 온기 없는 빈자리를 마주하면 울곤 했다. 이불에 들어가 아이를 안고 있다 다시 잠이 들기도 하고, 아이를 안아 거실에 이불을 펴고 다리 베개를 해주며 스탠드 불빛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잠자는 방에 스탠드를 옮겨 보기도 하고 엄지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핸드폰 작은 자판으로 두드리기도 했다.


나 홀로 독서는 담담히 시작했다. 자꾸만 작아지는 나 때문에 그때는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읽기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온라인상에도 수두룩한 게 독서모임이지만 시간과 관심사의 차이 때문에 누구에게 나를 맞추기 힘들었다. 그저 하루에 한쪽이라도 읽자, 혼자라도 하자하며 아침 시간에 일어나기를 시작했다. 습관이 되어 이제는 5시, 6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1시간 이상을 온전한 내 시간으로 쓸 수 있다. 간혹 아침 밥 시간을 넘기기도 해서 아이들이 밥 먹는 식탁에 핸드폰과 자판을 올려놓고 마무리를 짓기도 한다. 아침 나 홀로 시간, 독서와 글쓰기는 빼먹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아침에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니 밤잠을 정말 푹 잤다. 개운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생각하며 말끔한 아침을 맞았다. 대신 밤잠 시간이 조금 빨라졌다. 이른 저녁부터 잠이 쏟아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잠이란 줄인다고 줄여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줄어든 잠은 이른 밤잠, 때로는 낮잠, 저녁잠으로 보충을 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머리만 대면 잠이 들게 되었다. 숙면이 삶의 질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모른다. 머리에 안개가 낀 듯 뿌옇고 흐릿한 정신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다른 사람의 머리가 어떤지 알 수 없으니 비교할 수는 없다. 몽롱한 아침잠에서 덜 깬 듯한 대뇌 피질 안에 모자를 한 겹 덥어 쓴 느낌? 그런 안개와 같은  커튼을 한 겹 벗겨버린 듯한 맑음, 청명함을 주는 것이 숙면의 효과다. 그럴 때 내 눈은 또랑또랑 반짝이는 빛을 내지 않을까? 망울망울 사슴 눈빛일까?


그런 숙면을 요즘 방해받고 있다. 숙면의 효과를 느끼던  짧고도 아름다운 날들이 지나고 눈이 흐리멍덩해지고 있다. 뇌 안에 다시 두건 하나를 둘러 쓴 것 같고 어깨, 목이 뻐근하다. 아침 독서를 열심히 한 탓이 아니다.  그건 순전히 왕지네가 나오고 나서부터 그런 것이다. 침입자 녀석.  두려운 마음이 몸을 굳게 만들고 선잠을 자게 했다. 경직된 몸은 밤새 꿈나라에서 여행을 한다. 어젯밤 꿈속에서는 관광버스를 타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핸드폰과 가방을 두고 내려서 끙끙거리고, 복실이 핸드폰도 두고 내려서 한 걱정했다. 다시 관광버스를 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다. 찾았으니 좋은 꿈인가? 놀러 다닐 꿈인가? 꿈 사이사이 참 자주도 깬다. 새벽이 더 빨리 오면 한 잠을 더 자야 한다며 몸을 위해 이불에 나를 다시 파묻는다.



잠이 온다. 눈이 흐려진다.


그래서 시작한 벌레와의 전쟁.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 벌레를 배우고 있다.



‘아이고 목이야 삭신이야.‘


벌레 생각만 해도 온몸이 굳는다. 그러나 승리하리라!


온몸이 뻐근하니 밥 할 생각이 절로  난다.




의지의 남편은 요즘 라면을 참고 있다. 매일 오후 5시가 지나가면 배달어플을 뒤적인다. 고맙게도 바쁜 핑계로 더불어 함께 먹는 불량주부.


왜 이 글을 쓸 때면 늘 밥때가 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고, 왜 이 글을 쓸 때면 늘 준비할 형편이 안 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오늘도 바쁘다. 오늘은 가게 하수구가 꽉 막혀서 난리통이다. 남편 사장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안쪽이 아니라 바깥에서 넘치니 그나마 다행이다. 걱정 마시오, 사장. 가게는 불량 주부가 지킨다!


밥은? 아직 취사를 못 눌렀는데 오늘은 뭘 먹지?


밥보다 중한 것이 많다. 이 그렇다. 건강이 그렇다. 뜻밖의 사건, 하수가 넘치는 것도 그렇다. 그러니 오늘의 밥걱정은 덜었다. 밥을 잘 먹어야 건강한데 오늘 밥 생각은 건너뛰자. 하하하.


하루 살이, 걱정 살이, 아슬아슬한 인생 같으나 걱정의 크기가 늘 한결같이 큰 것은 아니다. 밥의 크기가 때로는 콩알만큼 작아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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