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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ug 24. 2024

고추 꼭지 따고 넘어지다

농부 아빠의 이마에 피가 철철(사실은 조금) 났다는 소식이 문자로 전해졌다. 전화는 안 하고 문자를 보낸 것은 이마에 난 커다란 상처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데크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하며 머리를 박아서 머리카락도 한 웅큼 빠졌다고 한다.


아침부터 해는 뜨거웠다. 건조기에 부랴부랴 고추를 넣어야 한다며  농부 아낙을 불러낸 농부 아빠였다. 농부 아낙은 고추 꼭지를 따 놓고 출근했다. 땡볕에서 농부 아빠는 고추를 씻어 채반에 가지런히 널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눈으로 땀도 흐르고 고춧물도 튀어 눈이 가물가물했겠지. 한순간 눈을 감고 데크 끝자락을 밟았나 보다. 커다란 고추 건조 채반을 든 채로 말이다. 농부 아낙은 출근한 후였다. 아무도 없는 시골집에 홀로 남겨진 농부 아빠. 뇌진탕은 아닌지 노심초사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농부 아낙. 지난 겨울 옆집 아주머니가 사다리에서 뒤로 넘어져 발견되기까지 한참 걸렸던 것이 자꾸 생각났다. 시골 사는 이모 님은 벌에 머리를 쏘여 밭에서 발견되었다. 농부 아빠는 그만하기 천만다행이다.


그리하여 넘어진 김에 오늘은 남편과 둘이 꾸리는 가게를 쉬기로 했다. 쓰지 못한 여름 휴가를 고추 때문에 넘어져 쓰게 되다니. 농부 아빠는 어지럽거나 다른 증상은 없다고 했다. 운전을 해서 가게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농부 아낙은 얼른 약국에 가서 이마에 붙일 밴드를 샀다. 밴드가 커서 이마를 다 덮고 눈까지 덮지는 않겠지? 운전을 하고 올 정도면 멀쩡한거 맞겠지?


사람 발길이 드문 시골에서 홀로 사고를 당한다면 큰일이다. 요즘 같이 더운 날 밭에 나가 체온이 올라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쓰러지는 농부들도 있다고 한다. 농사 일도 중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면서 일 하자. 일보다 사람이 중하다.


산업 현장에도 안전 수칙이 필요한 것 처럼, 농사 짓는 논과 밭에서도 안전 수칙이 필요하다. 더운 날에는 수시로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쉬자. 폭염 경보가 내린 날에는 밭에 들어가지 말자. 외진 곳에서 농사 일을 할 경우 둘 이상 동행하자. 그리고 핸드폰을  몸에 꼭 소지하자. 외딴 곳에서 홀로 사고를 당할 것을 미리 대비하자. 농부 아낙은 요즘 배에 가방을 두르고 다닌다. 그건 어린 아들이 쓰던 슬링백인데 허리에 안성맞춤이다. 좁은 수납 공간에 사진을 찍기 위한 핸드폰을 넣어 다닌다. 그건 비상 연락 용으로도 참 좋은 것 같다.


농부 아빠는 다행히 멀쩡하다.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마에 혹이 났고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 안쪽에 동전만한 빨간 상처가 생겼다. 이마에 커다란 밴드를 붙였고 가게 문에는 ‘오늘 쉽니다. 늦은 휴가 갑니다.’ 라고 써 붙였다. 그리고 밀린 일을 열심히 했다. 문을 닫아도 일복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다행이고 다행이다. 이마가 까졌지만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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