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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Sep 22. 2024

마주할 용기라니

마음속 낯선 감정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고독하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꾸미지 말라.


냉정하게

내 안의 고독과 슬픔을 인식하라.

한 꺼풀 고운 소리로 살포시 덮어도

가려지지 않는

지독한 슬픔과 고독을 마주하라.


나의 슬픔

나의 고독을

마주할 용기라니


철 지난 고춧대 빈 강정 같은

헛헛함을 만나게 될까 봐

밟으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바스러질까 봐서

철 모르는 농부는

화분에 고이 모셔둔 고춧대를

뽑지 못하고 있는 걸까.


묵은 슬픔과

홀로 견딘 추운 겨울을

어루만지는 빗방울을 머금고

등불을 밝힌 채

보아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지난가을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딸 때

같이 뽑아버릴 것을

마당 한 켠 버티고 선

자리가 못내 허전해

미루어 두지 말 것을.


나의 슬픔

나의 고독을

마주할 용기라니


2024.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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