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대체로 맑고 일교차가 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겠다. ’ 오늘의 날씨 예보.
폭우 뒤 아침 출근길은 상쾌하다. 비가 멈추고 하늘은 구름 걷어낼 준비를 한다. 먹구름이 돗자리 깔아 놓은 듯 깔려 있고 먼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하나 둘 떠다닌다. 하늘색 바탕에 바람을 탄 흰 구름과 회색 구름이 가득이다. 새파란 하늘이 아니라서 파스텔톤 하늘색이라서 그런가 아침 기분이 더 달콤하고 부드럽다. 꼬마들이 늑장을 부리지 않으니 출근 준비가 순조로워 더욱 우아한 아침이다.
며칠 거센 비에도 텃밭은 그럭저럭 괜찮다. 대파가 쓰러졌고 키 큰 들깨가 쓰러졌다. 고추는 마지막 붉은 열매를 우수수 땅바닥에 떨구었다. 가을 단풍잎 떨어지듯 까만 제초매트 위에 붉은 꽃비가 내려앉았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부러진 것은 없다. 며칠 해가 나면 깨도 파도 꼿꼿이 서길 바라며 힘차게 출근한다.
“얘들아 비가 왔으니 오늘은 뭐가 달라졌나 좀 봐봐. “
작은 개울에 무성하게 자라 도로와 키재기를 하던 풀이 작아졌다. 수초인지 갈대인지 억새인지 억세고 질긴 풀들이 거센 계곡 물살에 드러누웠다. 시골 동네 밭마다 고랑에 물이 고여 도랑이 되었다. 개울 흙탕물이 모여 하천으로 흘러간다. 굵은 비가 쏟아지며 무섭게 불어 올라오던 수위가 이제는 안정적이다. 황톳빛 흙물이 수초를 지르밟고 여유롭게 흘러간다. 물에 잠겼던 황금 벼는 다시 상큼한 가을 공기를 맡고 있고 들판의 벼들도 다행히 쓰러진 흔적이 없다. 가을비를 맞으며 황금색이 더 누렇게 변했다.
아이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하늘이다.
“엄마 하늘에 섬이 떠있어. ”
이제는 안다. 아이들의 머릿속 세계는 게임 세계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이라는 것을. 그래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늘에는 섬이 있단다. 스카이 블록으로 만들어져 있단다.
‘그렇구나. 너희들은 하늘의 섬인지 성인지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었구나. ’
아이들은 게임 세계에서 늘 보는 것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 하늘의 섬에서 걸어 다니며 뛰어다니며 건축을 하고 사냥을 하고 함께 놀러 다니니 그럴 테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늘에 섬이 둥둥 떠다닌다고 생각하면 정말 놀랍다. 그건 세상의 법칙을 모두 뒤엎는 획기적인 일이다.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에잇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야. 반면 아이들은 가능 불가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인다. 아이가 아는 현실 세계는 좁디좁아서 가상 세계만큼이나 잘 모르니 구분 자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가능을 생각하는 것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 불가능을 가능이라는 생각으로 바꾸는 순간 늘 감탄을 하게 되니까. 난 그 감탄사가 좋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매일 밥 먹는 것과도 같은 일상인 그 게임 세계를 엿보고 싶다. 아이들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는 것은 그래서 재미있다.
그렇게 평온했던 아침 하늘은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자 말끔한 파란색이 되었다. 따스한 하늘이 좋다며 부신 눈을 슬쩍 감고 좋았는데 등짝에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의 햇살은 아직 여름을 보내지 못한 듯 뜨겁다. 바람만이 가을이란다. 바람이 슬쩍 감나무 이파리를 들추고 지나갔는지 주황색 불긋불긋한 감이 하나 둘 보인다. 그렇게 뜨거웠던 정오의 태양이 다시 서산 너머로 사라지자 또 다시 바람 분다. ‘일교차가 크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겠습니다. ’ 기상청의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엄마 가을이 오나 봐.
가을을 알리는 무엇도 앞에 보이지 않는데 복실이가 그런다. 앞에 선 나무는 초록색, 하늘은 파란색, 구름은 흰색. 뭘 봐서 가을이라는 거지? 저 파란 하늘 솜구름 위에서 또 뭘 본 것일까? 대체 뭘 보고 아이는 가을이 오는 것을 알았을까.
엄마 추워.
가을이 오나 보다. 복실이가 가을바람을 느낀다. 반팔 입은 아이의 몸을 당겨 감싸 안았다.
나는 아이의 하늘 섬에서 감탄하고 아이는 현실 세계에서 바람의 감각을 익힌다. 우리의 세계에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완연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