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보나 Oct 28. 2024

주황불에 걸렸다

비가 온다.

가을비가 말라비틀어진 속 빈 들깨 줄기를 때린다.

거뭇해진 들깨 마른 줄기가 혹독하게 털리고 있다.

어제 다 털어 더 털 것도 없는데 차가운 비가 자꾸 때려댄다.

옆집도 이틀 전에 털었다고 했다.

온 밭에 까만 들깨가 누웠다.

아침인데 저녁 같은 날이다.

출근 시간인데 퇴근 시간 같다.

아침이 컴컴하다.

차가운 비구름이 두텁게도 하늘을 메웠나 보다.

모두 앞뒤로 불을 밝히고 달린다.  

비가 오니 천천히 간다.

꼬마 둘을 태우고 가니 서두를 일이 없다.

재촉을 안 하니 더욱 느리다.

일찍 출발했으니 천천히 가도 상관없다.

그러나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첫 신호등에서 빨간 불이 나를 가로막았다.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인데,

오늘은 운이 없는 날인가 보다.

첫 신호등에서 빨간 불을 만나면 줄줄이 만나던데.

과연 신호등마다 정지 신호에 걸리고야 만다.

빨간 불이면 그나마 낫다.

빨간 불을 만나면 체념하고 정지를 할 텐데,

주황불에 걸렸다.

설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된다.

한 번이면 좋았을 텐데 두 번째도 고민된다.

신나게 달리다 주황불에 서기 힘들 때면 쌩 지나가고 마는데,

비가 온다고 느릿한 차는 설 수밖에 없다.

빨간 불은 신호등마다 섰으니 세기도 힘들다.

늦지 않게 출발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했다.


오늘의 배움.

신호등도 첫 만남이 중요하다.

주황보다 빨강이 낫다.


주황불에 갈까 말까 고민해 본 적 있는가.

나만 그런가.






이전 02화 출근길에도 끝말잇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