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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Oct 31. 2024

금 배추가 부러워서

기어이 김치를 담갔다. 시댁에서 가져다 먹다 김치를 다시 해 먹으려니 엄두가 안 났다. 하루 장을 보고 빠뜨린 재료가 있어 하루 미뤘다. 하루 더 미루고 싶지만 비싼 배추가 상할까 싶어 그러지 못했다. 고작 배추 하나로 김치 담는데 요란도 하다. 배추 반만 한 김치통에 반을 못 채운 김치가 참으로 초라하다. 세 포기는 담아야 작은 김치통 하나를 채우겠다. 맛든 김치를 들고 차에 탔다. 금 김치 향을 싣고 간다. 양은 적어도 김치향은 막강하다. 김치통 밀폐력이 꽝이다.


배추밭에 배추가 엄청 많았는데 왜 배추 한 포기 만 원에 가까울까? 마트 포인트 할인을 받아 칠천몇 백 원에 사 온 배추 한 포기는 가볍기 그지없었다. 들판에 펼쳐진 배추밭에 그 많던 배추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은 배추는 누가 먹었을까.


지난해에는 우리도 배추 농사를 지었다. 동네 주민 고라니가 먹고 갔다. 달팽이가, 나비 애벌레가 다 뜯어먹었다. 달팽이랑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잡으러  다니느라 농부 남편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매년 그랬다. 그러니 올해는 배추 농사를 짓지 말자고 했다. 가을에는 가게 일이 바빠 배추 수확철에 맞춰 김장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올해는 그냥 사서 먹자 했다. 올해에는 배추를 안 심었다. 농사짓기 시작하며 처음이다. 그런데 김장철이 되었는데도 배추값이 떨어질 줄 모른다.  고라니랑 달팽이가 먹어도,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다 뜯어먹어도 심을 걸 그랬나.  배추가 비싸다고 푸념을 했더니 대번에 남편에게서 내년에 배추를 심자는 말이 나온다. 그럴까? 남편의 말대로 한 줄만 심을까? 배추는 사다 먹자 굳게 다짐했으면서 또 마음이 흔들린다.


등교 수송을 마치고 출근 전 걷는 길. 배추 들판으로 나갔다. 남의 배추밭 거닐며 배추 구경이나 실컷 해보자. 아침부터 비싼 배추 잘 자라고 있나 살펴보는 들판 시찰이다.  많고 많고 많구먼. 걸어도 걸어도 계속 배추 밭이구먼. 한창 수확철이구먼. 배추망에 배추가 쏙쏙 들어가는구먼. 큰 트럭이 온 밭의 배추를 다 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구먼. 근처 마트에도 좀 내려주면 좋겠구먼. 다 싣고 어디로 가는구먼.



남의 배추가 커 보인다. 초록 배추 한 포기가 만 원짜리 한 장! 배추가 돈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그냥 배추밭으로 안 보인다. 돈이 들판에 쫙 깔렸다.


바람과 비와 태양과 흙, 그리고 모르는 농부의 땀방울이 키워낸 배추가 커다란 트럭에 실려간다. 아~~ 실려 간다. 금 배추를 실은 트럭은 좋겠다.​​​

들판에 가득 찬 남의 배추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수확이 끝난 배추밭에 남은 배추와 굴러다니는 배춧잎마저도 탐이 난다. 그러나 절대 남의 밭에 들어가면 안 된다. ‘채취 금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괜찮다. 배추는 안 심었지만 지난해 비쌌던 파는 올해 엄청 많이 심어서 파국을 많이 해 먹고 있다. 인생 뭐 그런 거지. 집 앞에 우리 대파가 얼마나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도 내년에는 배추를 심겠지? 아마도? 너도나도 엄청 많이 심으면 배추 값이 뚝 떨어지는 건 아닌지 몰라.


배추 시찰을 건강하게 마치고 출근했다. 금 배추 기운을 가득 받아 기운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장사 대박을 기원하며 내일도 배추밭을 걸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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