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딸 하나 차에 싣고 간다. 쌀쌀한 날씨에 외투를 챙겨 입고 나왔다. 곰돌이 털모자를 둘러쓴 복실이의 커다란 머리가 룸미러로 보인다. 밥 대신 단감을 입에 넣고 가는 내내 씹어 먹고 있다. 엄마가 입에 계속 넣어 줘서 그렇단다. ‘제발 차에는 뱉지 말아 주라. ’ 오물거리는 곰돌이 녀석이 귀엽다.
“달복아 너도 곰돌이 모자 하나 살까? ”
귀엽고 따뜻하고 참 좋은데 4학년 달복이에게 곰모자를 씌우려는 건 엄마의 욕심일까?
“오빠는 토끼 모자 있잖아. “
복실이는 오빠 모자를 사준다니 심통이다. 달복이는 절대 필요 없다고 하는데. 지난해에 달복이가 모자를 사달라고 했었다. 배달 온 모자는 모자가 아니라 장난감이었다. 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우스운 장난감 모자였다. 남자아이들은 입는 것 쓰는 것 신는 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 아이들만 그런 것일까. 이제 관심이 좀 생길 때도 되지 않았나? 그들에게도 관심이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복실이와 엄마. 둘은 날씨에 민감하다. 추우면 차에서 덜덜 떨고 담요도 덮어쓴다. 호들갑이 아니다. 추워서 그렇다. 아들 셋은 추위에 감흥이 없다. 면티에 운동복 하나 입고 차에 오르셨다. 아마도 겉옷 안에는 반팔이 아닐까. 달복이는 그나마 엄마와 긴 실랑이 끝에 얇은 긴팔을 입었다. 긴팔을 좀 살까 해도 아들들은 그런다.
“옷 많아요. “
그런데 왜 안 입고 다니는 걸까. 설마 날씨를 감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그들은 날씨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 비가 와도 흥 안 와도 흥. 그저 맞으면 그만이다. 비 오는 날 우산 들기가 귀찮을 뿐이다. 세 아들들 모두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안 가지고 가 전화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비가 오면 현관에 서서 하늘에서 주룩주룩 세차게 떨어지는 비를 보며 하늘을 원망하고 우산을 안 챙겨준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가 혹시 우산을 들고 나와주지는 않을까 기다린다. 이런 감성 없나? 얼마 전 복실이가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엄마 누가 내 우산을 가져갔어. 비가 많이 와. ”
그 말이 반가워 당장 학교로 달려갔다. 아이가 걷는 길이라고는 학교 앞에 있는 학원까지다. 비 오는 날 우산 감성이란 이런 거란다, 아들들. 그런데 다음번 비 오는 날 또 복실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 누가 내 우산을 또 가져갔어. ”
학교로 달려가며 남의 우산을 가져간 학생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우산 감성’도 한 번이면 족하다.
낙엽이 떨어진다. 출근길 단풍 구경을 한다. 며칠째 복실이와 엄마는 콧소리, 애교소리, 함성을 모아 모아 운전석과 맨 뒷좌석에서 교감을 한다.
“우와아아아아! ”
몇 년 만에 단풍이 절정이다. 온 산이 울긋불긋하다. 즈므 고가도로를 타고 달린다. 구름다리를 타고 난다. 늘 그곳을 지나갈 때면 구름을 타고 먼 산을 눈에 담았다. 요즘은 노랗게 물든 은행잎 구경이 한창이다. 즈므 고가를 지나 법원을 지나 오죽헌을 지나 경포 교차로까지 감탄사를 연발하며 달린다. 복실이와 엄마만 그런다.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쭉 은행나무다. 왼쪽은 아직 연두 오른쪽은 노랑이 절정이다.
“엄마 왜 왼쪽은 초록이고 오른쪽만 노랑이야? ”
“엄마도 궁금하네. 신기하다 그치? ”
운전석과 맨 뒷좌석까지 우리끼리 통하는 말이 오간다. 아들들은 감흥이 없다. ‘흥이다. ‘ 법원 근처에서, 오죽헌 근처에서 신호등을 만날 때마다 아들들에게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진 하나 찍어주면 어디 덧나나.
“안돼. 역광이라 색깔이 안 나와. “
‘그래 너 잘 났다. 색깔이 안 나와도 한 번 눌러나 줘보지. 사진이 잘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네 감성이 모자란 거야. ‘
달리는 차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대신 가슴속에 노란 빛깔 은행잎을 마구 담아 왔다. 온 산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도, 빨갛게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나무 이파리도, 연두와 노랑의 점묘화를 그려놓은 듯 하늘에 점점이 찍혀있던 자작나무의 잎사귀도 모두 주워 담았다.
아들 셋은 감성이 빵이다. 감성 충만한 딸이 하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들 셋은 감성 대신 다른 데 관심이 있다.
게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엄마는 게임을 거의 안 한다.
음악에 관심이 있다.
엄마는 음악을 안 듣는다.
핸드폰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엄마는 핸드폰을 켜기만 하면 뭐라고 한다.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 것만을 골라서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겠지?
아침 출근 시간 아이들은 등교시간, 살림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시간을 쪼개 현관문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기 소리를 뚫고 함성이 들려왔다.
“엄마!! 지금 청소기를 돌리면 ~~~! “
거구의 청소년 둘이 좁은 중문에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엄마가 출발을 안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저 엄마가 왜 저러지? ‘
‘대체 왜 아침에 안 하던 청소를 하는 거냐? ’
아이들은 등교 시간, 지각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캄캄한 밤 퇴근길 조수석에 탄 복이와 운전자의 뒤에 탄 복동이가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운전자는 모르는 이야기라 딴생각을 하며 열심히 운전을 했다. 옆과 뒤에서 어린이들의 말소리가 웅웅 거리니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달리던 길이 산을 오르고 옛 봉수대를 지나 비탈을 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옆에 탄 복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흥분을 한다.
”여기가 *맛도리야! “ 중간에 강아지 어른이 들어가는 이상한 말이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니 좋다는 말이란다. 맛이 들어가면 맛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내리막길이 엄청 맛있다니 엄청 달리고 신났었나 보다.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직선 내리막길을 달려 신났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대체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쏘다니는 거냐 아들아. 신나게 다닌다니 다행이다만 ‘꿀잼’ 이런 말로 순화해주면 좋겠다. ‘
아들들은 타는 것에 관심이 있다.
신기한 것은 아들들은 달리며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는데 유독 신호등에 관심이 지대하다. 빨간불에 자주 걸리는 엄마를 위해 조금 더 달리면 초록불에 건널 수 있다고 조언을 해 준다. 달려도 못 건넌다고도 말해준다. 한 곳에서 걸리면 줄줄이 어디까지 걸리는 지도 꿰고 있다. 신기할 뿐이다.
보행자가 기다리며 빨간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등이 있다. 우리 동네에도 하나 둘 보인다. 복동이가 신기하다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들아 신기하기는 하다만 엄마는 노랑 은행잎 사진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