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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Nov 04. 2024

큰 나무 아래 서면 숲의 소리가 들린다

가을을 가만히 만나다

우리가 달려온 길을 돌아본다. 산에서 출발했으니 산이 있겠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 창틀 안에 담긴 산을 눈에 담는다. 먼 산을 보면 멀리 내다볼 수 있을 것 같다. 도로를 달리며 순간 지나가는 먼 산. 길게 늘어진 험준한 태백 준령을 모두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이 되면 희끗한 눈 덮인 모습도 볼 수 있겠지. 계절의 변화도 가늠해 본다. 그러나 가을은 보이지 않는다. 가을의 흔적은 멀리 서는 찾을 수 없다. 그저 저 산속에 가을이 있겠지 하며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다.


한낮에 산을 향해 달린다. 훤한 시간 집에 들어가니 생소하다. 우리 집을 등지고 선 낮은 산을 보았다. 울긋불긋 단풍이 장관이다. 집에 들어앉아만 있다 쌩하니 출근을 하고 깜깜한 밤에 퇴근을 하니 모르고 있었다. 산속에 살아도 뒤 돌아 선 산은 볼 수 없다. 한 밤중에는 안 보이던 산, 그걸 한낮의 빛에 비춰 보고서야 알았다. 앞산만 붉은 줄 알았는데 뒷산도 붉더라. 산속에 있어도 산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때도 있더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샛노랗게 변해가는 은행잎 아래 서서 가만히 보고 싶다. 전깃줄을 품고 선 샛노란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은행잎이 바람에 잔 물결을 만든다. 잎과 잎이 만나 부대끼며 내는 가을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아쉽다. 나만 은행나무 아래 내리면 좋겠는데 운전을 해야 하고 출근을 해야 하고 등교를 해야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시간이 관건이다.


그래서 꼭 사진을 찍으리라. 다짐했다. 사진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려면 잘 볼 수 있으리라.


찍었으나 역광이다. 복동이는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을까?

‘그걸 꼭 찍어봐야 알아? ’

아마 그러겠지? 꼭 찍어봐야 아는 사람도 있다. 눈으로 봐야 뒷산이 붉은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산속에 있어도 산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먼 산에 가 보아야 멀리 본 줄 아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여기 있더라. 다만 가을 산을 보고 싶은데.


찍어 보고야 알았다. 역광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러다 알았다.

가을을 가만히 보고 싶다면

나무 아래 서면 된다.


큰 나무 아래 서면 숲의 소리가 들린다.

나무 아래 서서 가만히 가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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