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보나 Nov 06. 2024

서리가 내렸다 수도가 얼었다

서리가 내렸다.

연둣빛 생강잎 위로 살얼음이 붙어 버렸다. 얼른 캐야 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간 남편은 마음이 바쁘다. 날이 많이 춥나 보다. 생강에 잔뜩 붙은 흙을 씻어야 하는데 바깥 수도가 얼어버렸다.

얼었다!


춥다.

꽁꽁 얼어버린 복실이가 패딩 잠바를 입고도 춥다고 했다. 큰오빠 시험이라 모두 서둘러 일찍 차에 탔는데 복실이는 춥다며 마당에서 얼어붙었다. 바닥에 붙어버린 신발을 떼어 걷느라 엉금엉금이다. 담요와 더 두꺼운 털옷을 챙겨 복실이 자리에 소복하게 쌓아주었다.


나는 아직 가을 느낌 홑겹 옷에 홑겹 외투다. 앞 좌석에는 열선이 있으니 괜찮다.

차에서는 괜찮았다.


우리는 출발했고 까치는 날았다.

들깨 털고 빈 밭에 까치가 날았다. 서리 내린 찬 바닥에 흩뿌려진 들깨를 쪼아 먹고 있었나 보다. 비둘기가 바닥에서 날아오르듯 푸드덕 거리며 까치 십수 마리가 날아올랐다. 아침부터 배부른 까치떼를 만나다니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달린다.

해는 참 따뜻하고 눈부시다. 눈이 많이 부시다. 아이들은 눈뽕이라고 한다지? 작은 눈이 안 보일 만큼 감겼다. 조수석에 탄 복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싶었다.


내린다.

홑겹 옷에 홑겹 외투 사이의 빈약한 공기층이 금세 찬 공기로 채워졌다. 옷깃을 아무리 여미어도 찬기가 팔뚝과 몸통을 훑고 전신을 빠르게 돈다. 공기의 순환이란 이런 것이구나. 아 춥다. 종종걸음으로 꼬마 둘을 교문에 데려다주고 차로 돌아왔다.


가게에 도착했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뽑았다. 난로 삼아 옆에 놓아두고 두 손으로 포옥 감싸 안았다.

따뜻하다.

이전 07화 비 흠뻑 맞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