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방 갈까, 노래방 갈까? ”
시험 1일 차 : 시험을 앞둔 아이의 흥겨운 물음이다. 조수석에 탄 복동이가 뒷자리에 앉은 동생 복이에게 묻는다. 시험 걱정보다 시험이 끝나면 피시방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한 아이다. 한 달의 ‘게임 안 하기 약속’이 끝나간다.
“공부를 잘할수록 게임을 잘하나 봐. 잘할수록 티어가 높아. ”
시험 3일 차 : 복동이의 시험 어록에 올려야겠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게임도 잘한다고 했다. 그래 곤궁한 변명이지만 공부도 열심히 게임도 열심히 하여라. 시험 기간 동안 출퇴근을 하며 큰 아이는 시험에 대한 이야기보다 3학년의 마지막 시험 뒤의 계획 이야기에 바빴다. 그동안 참아오던 게임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시험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게임의 세계가 열리니 그것이 좋은 것이다.
기말 시험은 총 3일 동안 두 과목씩을 봤다. 공부에 몰두하는 평소와 다른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빠가 물었다.
“내일 무슨 과목 봐? ”
“사회랑 수학. ”
하루에 두 과목 시험 본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말없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아이는 진지했다. 무슨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것처럼 컨디션도 조절했다. 자가진단 과민성대장증후군인 아이는 첫날 아침밥도 먹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로 달려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번 시험은 그래서 밀려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건 성적이 최종으로 나와봐야 알지만 말이다. 늦은 시간 집에 와 바로 씻고 잤다. 공부는 학원이나 도서관에서 집에서는 휴식을 취한다. 아침 6시에 깨워 달라고 했다.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공부에 활용했다. 스스로 일어나지는 못했다.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지고 있다. 6시에 흔들어 깨우면 10분 더 자겠다고 3일 동안 내내 그랬다. 그래도 일어나서 꿋꿋이 공부를 했다. 출발 전까지 알차게 공부했다. 중요한 건 성적이 아니다. 공부할 의지가 생겨 아이 스스로 시간표를 짜서 시험을 대비한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좀 멀리 보고 미리 보고 인생 계획도 좀 세우고 하면 좋겠지만 그건 엄마의 욕심이다. 엄마는 늘 말했었다.
”공부를 하지 말고 마음을 다스려. 밀려 쓰지만 않으면 성공한 거야. “
긴장감이 높고 민감한 아이의 성향이 늘 걱정이었는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시험 전날 집으로 가며 그즈음 읽고 있던 책 속 ‘자유’에 관하여 넌지시 말을 꺼냈다. 꼬마들은 잠자는 시간에도 먹히는 말이다.
“자유가 어쩌고 저쩌고. 주절주절... “
몇 번 호응을 해 주던 아이는 엄마의 말을 끊었다. 다음 날 첫 시험으로 사회 시험을 보는데 시험 보는 거랑 헷갈리니 안 듣겠다고 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좀 들어주지. 엄마랑 대화할 시간이 언제 있다고.
다음날 아침 아이는 학교에 가며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어쩌고, 수요과 공급이 어쩌고. ”
아이고 머리야. 전날 엄마 말을 끊고 스스로의 머리를 보존한 이유가 있었네. 엄마도 다음에 머리 아픈 이야기는 참아 볼게. 아이는 사회 시험도 잘 봤다고 했다. 참 기특하다.
차에 타면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날씨, 계절 이야기, 책에서 읽은 이야기, 앞에 가는 차 이야기, 아빠의 험담 등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나 큰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말은 옆에서 옆으로 왔다 갔다 오가는 게 아니라 앞 뒤로 오고 간다. 게임 이야기는 엄마랑 할 수 없으니 중3 형과 중1 복이, 앞과 뒷자리를 왔다 갔다 넘어 다닌다. 같은 공간에서 엄마는 빼고 치사하게. 그래도 아이들이 알 수 없는 세계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들으면 나 보다 유식한 아들을 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라도 만족을 해봐야지 어쩌겠는가.
금요일 3학년의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아이는 전화가 없었다. 친구들이랑 단체로 피시방에 간다고 했다. 동생 복이도 학원이 끝나면 피시방으로 가다고 했다. 아들은 다 저녁에 들어와 말했다. 환한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큰아이 복동이의 그렇게 환한 미소는 여드름이 난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엄마 너무 행복해. ”
아이 입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순간 시험을 너무 잘 본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만점?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아이는 한 달 만에 게임을 하고선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또 게임을 열심히 했다. 일끝난 아빠와 또 집에 와서 새벽까지 했다. 멋진 아이다.
게임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