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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Nov 14. 2024

우리에게 김치란 우리에게 김장이란

나는 퇴근길에 차에 배추를 실었다. 평소에는 한 포기만 하는 김치인데, 큰 마음먹고 배추 세 포기나 샀다. 큰 마음이 작아져 밤에 김치를 못했다. 나는 아침 출근길에 다시 배추를 차에 실었다. 가게에서 기어이 김치를 만들어 냈다. 막김치 한 통과 겉절이 조금. 나는 작은 겉절이 한 통을 싣고 당당하게 퇴근했다.


남편은 퇴근길 어머님 댁에 들러 김장 김치 다섯 통을 싣고 왔다.




김치를 할 생각이었다. 배추 세 포기가 든 망 하나를 마트에서 사 왔다. 밭에서 볼 때엔 행운의 금 배추로 보이던 것이 집에 데리고 오니 커다란 짐 덩어리가 되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팔다리가 쑤시고 아팠다. 배추 세 포기가 주는 중압감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밤중에 하려던 김치를 못했다. 안 하고 하루 미뤘다.


초록 망에 든 세 포기의 배추를 차에 실어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배추를 싣고 가게에 내려놓았다. 배추, 굵은소금, 새우젓, 무, 파 등 박스에 얼추 싣고 출근했다. 짬짬이 배추를 썰고 소금을 뿌렸다. 김장할 정신은 없고 커다란 김장 배추를 잘게 썰어 막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없는 재료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양파와 부추를 사 왔다. 그래도 또 없는 재료가 있다. 집에서 안 가져온 찹쌀가루도 한 봉 사러 마트를 다녀왔다. 코앞 마트라지만 많이 번거롭다. 역시 두 집 살림을 하면 손해다. 준비해야 할 것은 꼭 메모해야 한다. 찹쌀가루만 세 봉지가 돌아다닌다.


저녁은 겉절이에 라면을 먹었다. 김치 한 날은 라면을 먹어야 한다.


가게가 바빠 소금에 배추를 절여 놓고 한참 있어서 짤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괜찮았다. 복동이가 짜파게티에 겉절이를 곁들여 먹고선 “엄마 짜! ” 그래서 깜짝 놀랐다.

“짜? ”

“아니 짱! ”

짤까 봐 걱정했는데 짱이라고 한다.


바쁘게 종종 거리며 김치 세 포기를 겨우 겨우 해냈다. 좀 멋지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했다. 김치를 먹고살아야 하는 인생이라 참 서글프기도 했다. 김치 없는 밥을 먹고 나면 김치만 놔두고도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녁에 어머님의 전화, 김장해놨으니 집에 갈 때 보내마 하셨다. 젊은 사람이 세 포기로 쩔쩔매는데 나이 드신 어머니는 아픈 팔로 어떻게 다 하셨을까. 미안하고 죄송스러우면서도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화로만 감사를 전했다. 어머니는 그러고 며칠을 앓으실 테다. 남편은 거실에 김장 김치를 내려놓으며 수육이 먹고 싶다고 했다. 밤에 야식은 일절 끊은 사람이 라면도 하나 더 먹고 싶다고 했다. 라면도 수육도 먹을 생각이 나니 좋겠소. 김장엔 수육이지. 그럼 오늘은 수육을 해야 하나.


우리에게 김치란

우리에게 김장이란

그냥 먹거리가 아니다


어린 시절 농사짓는 집에 태어나 몇 백 포기 김장을 하는 걸 보고 자랐다. 국민학교 학급 문집에 배추에 관한 글을 써냈다. 배추가 서리를 맞았고 그 어린 눈에도 알이 가득 찬 배추를 감싸고 있는 새끼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왜 쪽파를 심었을까. 김장 때만 되면 흙이 잔뜩 묻은 쪽파를 하루 종일 앉아서 까야했다. 그나마 마늘 농사를 안 지어서 다행이었다. 요리조리 피하던 마늘이었는데 결혼하고선 마늘의 고장에 정착했다. 부른 배를 안고 마늘 몇 접을 며칠에 걸쳐 깠다. 남편은 기계를 좋아하는데 김장 때엔 기계가 별 필요가 없으니 채칼을 가끔 사 왔다. 자신이 무채를 썰어주겠다며 한 번 쓰고는 어디 구석에 박아놨다. 김장에 관한 역사야 주부라면 누구나 풀어놓기만 하면 한 무더기씩 나올 테다.


결혼 초에는 왜 하는 김장마다 맛이 없었을까. 재료의 문제라 결론 내렸다. ‘김장은 소금 맛이다’라는 생각으로 소금을 사들였다. 간수를 빼려고 깨진 항아리를 두 개 구해놨었다. 합가를 하며 어머니가 알아서 굴러다니는 항아리를 버렸을 때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다시 분가를 하여 시골살이를 하며 깨진 항아리를 다시 구했다. 소금을 많이 사서 쟁여놨다. 그러고 나니 일을 하느라 바빠졌다. 배추에 소금 절여 김치를 할 겨를이 없었다. 소금은 오래돼도 괜찮다고 했다. 평생 먹어도 될까.


고춧가루를 일반 마트에서 사 먹으니 맛이 하나도 없었다. 알고 보니 고춧가루도 맵기의 차이가 컸다. 초등학교 급식용으로나 들어가는 안 매운 고춧가루로 김치를 하면 맛이 없다. 고추 농사를 지으며 고추의 품종이 여럿인 줄 알았다. 매운 고추, 안 매운 고추 둘 뿐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뭘 심어도 우리 밭에서 나는 고춧가루는 다 맛있다. 왜일까. 김치 하나 담가 먹어보겠다고 고추 농사를 지었다. 마늘과 양파는 겨울 기온이 많이 떨어져 한 해 망하고 도전해 보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의 집에서는 김치를 안 해 먹을 수 없다. 배추를 안 심어도 가끔 김치를 담가야 한다. 팔자와 신세타령의 말이 술술 나오지만 김치란 그런 것이다. 삶의 애환이 들끓어도 끊을 수 없는 우수에 찬 눈물 젖은 빵 중에서도 맛있는 빵. 편하려면 재료는 어느 정도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왜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일까. 김치를 할 때면 드는 생각이다. 어머님은 절인 배추로 김장을 했다고 한다. 친구분들도 미리 절인 배추를 주문한다고 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나는 뽀송하고 하얀 소금 가득 든 소금 항아리를 보면 든든하고 기분이 좋다. 농사지어 쟁여놓은 고춧가루를 보면 부자가 된 것 같다. 내가 만든 빠듯한 삶에 만족하며, 그리고 감사하며 오늘을 산다.


배추와 김치통을 실어 나르는 풍성한 김장철이다.  어머님께 감사를 전한다.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매일 바빠서 또 죄송하고 많이 먹어서 죄송하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은 수육을 먹고 싶다고 했으면서 김장 김치는 집에 다 내려놓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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