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마무리는 얼음물이다. 보통 마감 청소 후 얼음물을 들이키며 하루 일을 마친다. 전에는 보통 그랬다. 나의 물이었다. 오늘은 집으로 오는 차 안 조수석에 앉은 복이가 얼음물을 들고 있다.
요즘 복이는 가게 청소를 돕고 있다. 그래서 얼음물을 챙겼나 보다. 아빠와 용돈 협상을 하더니 벌써 2주째 마감 청소를 맡아서 하고 있다. 걸레질이라도 하려고 하면 자신의 일이라며 만류한다. 청소는 힘든데 대견하다. 돈벌이에 나선 아이는 부자가 되고 있다. 오늘은 주급을 받는 날이다. 그동안 번 돈을 5만 원권으로 바꿔 달라고 한다. 5만 원 권이 저장하기 편하단다. 돈을 모아 자전거를 바꾼다고 했다.
날이 많이 더웠다. 집으로 오는 길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복이가 챙긴 얼음물은 물이 다 비워졌다. 남은 얼음을 아이들이 입에 하나씩 물었다. 뒷자리에 탄 꼬마 둘까지 얼음을 먹겠다고 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며 얼음 컵을 먼저 받으려고 난리였다. 나도 얼음을 하나 물고 싶었는데 이미 뒤로 가 버린 컵에 얼음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하루의 마무리가 참 늦다. 손이 얼얼하고 발도 얼얼하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했다는 증거다. 집에 도착하니 11시다. 토요일은 한 주의 마무리이기도 하다. 얼음 말고 한 주의 보상을 받고 싶다.
여보 나는 보상이 필요하오.
낮에는 참 더웠다. 밤엔 바람이 분다. 하루 종일 실내에 있다 나오니 계절 감각이 멈춰 버린 것 같다. 서늘하게 옷감을 스치며 나오는 차량 에어컨을 껐다. 시원한 밤바람을 쐬려고 창문을 열었다. 까만 밤의 흙먼지가 낙엽을 데리고 훅 치고 들어왔다. 창문을 얼른 닫고 다시 에어컨을 켰다. 가로등불 아래 나뭇잎을 모두 떨군 회색 나무가 군데군데 서있다. 아침에도 우수수 떨어져 낙엽 뒹구는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잎이 거센 바람에 다 떨어진 걸 보니 마음이 또 아리다. 앙상한 뼈만 남은 나무가 되기 전에 더 많이 걸어볼 것을.
그러니 여보 나는 보상이 필요하오. 한 주 열심히 일을 했으니 말이오. 얼음물도 아이들이 다 마시고 얼음도 하나 안 남겨주고 저희들끼리 다 먹었단 말이오. 들리시오! 게임을 하느라 안 들리시겠지.
나에게 보상은 뭘까.
주부에게 보상은 뭘까.
겨울이 오기 전에 좀 걸어볼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걸어볼까? 나에게 보상으로 일요일 시간을 좀 내어 주시오. 들리시오? 남편은 무슨 보상을 받고 싶을까.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그도 무슨 보상을 원하겠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 늦은 시간 아이들을 싣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앙상한 회색 나뭇가지가 가로등 아래 처량한 밤이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휴식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잠을 자고 나면 거뜬하던데 나는 그걸로는 부족하다. 그러니 나는 보상을 원하오. 돈? 그런 거 말고. 돈은 반찬 사고, 옷 사는데 필요한 거지. 난 대체 뭘 원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