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밤과 같이 어두운 날이다. 회색 아래 더욱 짙은 회색빛이 일렁인다. 구름은 어둠의 장막을 넓혀가며 세찬 비를 몰고 왔다. 그 비를 다 맞으며 아침의 시골길을 걷던 세 여자. 그리고 차를 타고 달리던 한 여자.
첫 번째 그녀. 하늘색 우산을 쓰고 커다란 가방을 멘 그녀는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작은 비탈을 올라가는 그녀는 차를 피할 생각도 멈출 생각도 없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버스가 오기 전에 얼른 정류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곧장 걷는다. 작은 언덕을 넘어야 정류장이다. 곧 마을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속도를 줄였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지 않을 때 중앙선을 살짝 밟으며 하늘 우산 그녀를 사뿐히 추월해 지나갔다.
두 번째 그녀.
출근길에서 매일 만나는 익숙한 그녀는 보행보조기를 끌고 가고 있다. 세찬 비를 맞으며 양손으로 보행보조기를 잡고 씩씩하게 걷는다. 노란색 두툼한 비옷을 입었다. 일회용은 노랑 색깔이 흐릿한데 오늘은 진한 노란색이다. 다회용이 분명하다. 농사용 ‘가빠’ 일수도 있다. 아버지도 남편도 같은 빛깔의 우비를 비 오는 날이면 입고 들로 나간다. 출처가 비슷해 보이는 비옷이 반갑다. 그런데 비가 너무 세차다. 차량 와이퍼 속도가 갑자기 빨라진다. 그녀의 걸음을 맞춰 멀찍이서 속도를 줄였다.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하필이면 그녀 앞에서 물웅덩이를 만난 것일까, 속도가 문제였을까. 보호막이라고는 노랑 비옷 하나가 전부인 가녀린 그녀에게 물폭탄을 뿌리고 유유히 도망갔다. 그녀는 움찔하였지만 묵묵히 같은 속도로 걸어갔다. 그녀의 꿋꿋함이 처량해 보인다. 내가 물세례를 받은 것도 아닌데 화가 치밀었다. 그녀의 옆을 지나쳐 서서히 앞질러 갔다. 굽은 허리와 절뚝이는 다리가 더욱 짠해 보인다. 백미러로 본 그녀는 그저 걷고 있었다. 세찬 비에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보행보조기도 투명 비옷을 입었다.
세 번째 만난 그녀. 위아래 검은 옷을 입은 그녀는 검정 우산을 썼다. 우리 앞에 가던 차가 그녀의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왜 또 하필이면 그곳에 물이 고여 있었을까. 왜 앞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까. 그녀는 흠뻑 젖었다. 인도를 걷던 그녀가 멈춰 섰다. 자신의 몸을 훑으며 내려다보며 망연자실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침 출근, 등교 시간이라 그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어찌 보낼까 걱정이 되었다. 물을 뿌린 차는 아는지 모르는지 멈출 생각도 없이 저 멀리 가버렸다.
비 오는 날 시골길 운전은 무조건 천천히. 보행자가 보인다면 걸음마 수준으로 운전하기를 바란다. 옆에 가는 내가 뒤에 가는 내가 다 미안했다. 날도 찬데 두 분 모두 건강하시길 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4차선 도로를 올라타 우리 차도 물세례를 받았다. 비도 많이 오는데 투명하고 세차며 굵은 빗방울과는 차원이 달랐다. 옆차가 빠르게 지나가며 튀긴 물이 순간 앞 유리창 전부를 뒤덮었다. 물이 튀긴 것이 아니라 하얀 물거품이 유리창을 덮어버렸다. 달리다 갑자기 앞이 안 보이니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와이퍼가 멈칫하는 듯하더니-아마 그건 내 착각이었을 거다- 거세게 움직였다. 차는 다행히 유리창이 있었고 와이퍼가 있어 금방 시야가 회복이 되었다. 노란 비옷을 입은 그녀와 까만 옷을 입은 그녀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발 비 오는 날에는 천천히 달리자. 무슨 길이든 천천히. 물 튀기고 도망가는 차 님, 신고하면 벌금이라는데 당신의 악행을 지켜보는 눈이 여기에 있소.
“여보 보행보조기 끌고 다니는 할머니 봤어? “
”아니. “
왜 그녀는 내 눈에만 띄는 것일까. 그녀를 지나치며 차가 물을 퍼부었다니 남편은 함께 욕을 퍼부어줬다. 속이 아주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