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머리는 망가진 붓이야

by 눈항아리

우리는 같이 머리를 감았다.

샴푸를 하고, 린스를 하고,

아빠가 새로 사 온 헤어 드라이기에 붙은

에센스도 사용해 봤다.


복실아 머리가 정말 부드럽다.

엄마 머리도 부드러워.

엄마 머리는 붓 같아.


네 머리는 고운 붓.

내 머리는 서예붓일까?


아이는 엄마의 묶은 머리끝을 쥐어

붓털처럼 만들었다.

엄마 머리는

망가진 붓이야.

웃지도 않고 또박또박 말해서

더 열불이 났다.


아들도 그랬다.

엄마 머리털이 빗자루 같다고.

마당 쓰는 초록 빗자루.


괜찮다.

머리로 글씨를 쓸 것도 아니고

머리로 마당 청소를 할 것도 아니니.


나는 곱슬머리다.

남편도 곱슬머리다.

넷 중 한 명이 몰아서 물려받았다.

학교에서 다들 파마를 한 줄 안다.

자연스러운 베이비펌.


얘들아 혹시 모른다.

너희들도 자라면

큰오빠처럼 자연 파마머리가 될지도

엄마처럼 억센 곱슬이가 될지도

엄마도 어릴 때는

이런 돼지털은 아니었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쩌다 보니 방바닥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