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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가 좋을 때도 있다

by 눈항아리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1>
태산을 옮기다 55
살림의 기적, 태산을 옮기다는 소파 위에 쌓이는 빨래를 하루에 한 번 개고 인증합니다.

퇴근 후 역시나 소파에는 빨래가 가득이었다. 건조기에 들어앉은 빨래를 한 번 더 돌려 꺼냈다. 베란다 빨래터가 말끔해졌다. 이 또한 가끔 있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빨아도 퇴근 후 여섯 가족이 씻으면 한 무더기의 세탁물이 나온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또 한 무더기의 세탁물이 나온다.


세탁물은 금방 차는 데도 한 번씩 비어있는 세탁 바구니를 보면 기분이 썩 좋다. 바닥이 보이게 바구니를 비우고 나면 뭔가 주어진 사명을 다한 느낌이다. 곧 차오를 텐데 기분 좋을 일이 무어냐고 하겠지만 그저 좋은 것을 어쩌겠는가. 그 순간이 오래지 않을 것을 알지만 휑하게 빈 바구니를 제자리에 놓으며 잠시의 평화를 찾는다. 그 순간만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최강 주부가 된다.

세탁기에 다 돌아간 빨래를 위쪽 건조기로 들어 올리는 일은 조금 귀찮다. 무겁기도 하고 엉켜있는 빨래들이 서로를 붙잡고 있어서 세탁조 통 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 왜 세탁기는 늘 깜깜한지 그 까만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건조기의 빨래를 꺼낼 때면 다르다. 뽀송하고 따뜻한 빨래는 감촉도 좋고 향기도 좋다. 햇볕 좋은 날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하나씩 걷어내는 느낌이다. 새벽의 찬 공기 대신 건조기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또 건조기는 늘 환하다. 불이 있었던가? 불은 못 본 것 같은데 왜 건조기는 환한 것일까.

빨래를 꺼내 소파에 놓으면 꼬마들은 따뜻하다며 꼭 안아준다. 건조기에서 막 나온 뽀송하고 따끈한 빨래를 식구들 모두 좋아한다. 그런데 따뜻한 빨래가 끝났다는 건조기 알람소리는 안 반갑다. 일어나기 귀찮다. 통 속에서 서서히 빨래가 식어간다. 다 삭어버린 빨래를 자주 꺼내니 가끔 만나는 뜨끈한 빨래가 더 반가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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