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적으로 하루 쉽니다

by 눈항아리

사람이 인간적이어야 한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완벽함을 추구하되 조금은 모자란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제는 퇴근이 늦었다. 늦은 김에 그랬는지 빨래보다 운동이 먼저가 되어서 그랬는지 빨래를 후순위로 미뤘다. 미루면 못 하고 안 할 확률이 크다. 그럼 아침에 개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깜깜한 거실에 불 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새벽부터 식구들을 다 깨울 일이 있나? 핑계를 대면 꼬리를 물고 물고 줄줄이 나온다. 이런 자기 합리화에 특화된 것이 또 인간의 매력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태산을 옮기는 일을 오늘 하루는 쉬자. 인간적인 매력을 뽐내기 위한 일이니 하루 정도는 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제 꺼내놓은 빨래 한 무더기와 건조기에 돌아가는 빨래 한 무더기와 세탁기에 지금 다 돌아간 빨래 한 무더기를 합하면 저녁엔 총 세 무더기의 빨래산을 옮겨야 하니 오늘 저녁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어제 유자청을 시작했다. 택배가 한꺼번에 오는 바람에 유자 두 박스와 모과 세 박스가 한꺼번에 왔다. 나는 박스 부자가 되었다. 당분간은 더욱 몸만들기에 매진해야 한다. 몸을 보존하자. 그리하여 실내 자전거에 마음이 먼저 갔는지도 모른다. 오늘 대설 특보가 있다. 눈이 온다니 가을은 이미 물 건너 갔는데 나의 가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자가 얼마나 좋은지 받자마자 두 박스를 같은 농장에서 시켰다. 모과는 얼마나 큰지 모른다. 빨리 씻어서 썰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이런 노동에 심취한 몸뚱어리 같으니.


큰 것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리뷰를 남기려고 찍어둔 사진이다. 10킬로그램에 14~15과를 선택했는데 이렇게나 클 줄 몰랐다. 바로 작업하면 딱 좋겠는데, 유자를 하나를 얼른 작업하고 내일 마구 썰어줘야겠다. 이렇게 큰 모과는 처음이다. 모과도 유자도 좋은 물건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소파를 지키는 일은 하루 쉰다. 태산 옮기기는 하루 쉬지만 세탁기는 계속 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빨래가 좋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