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무더기의 빨래를 갠다. 복실이가 최대의 지원군이 되었다. 처음 빨래를 개던 때 고사리 손으로 바지를 바닥에 펴놓고 대칭을 맞춘 후 커다란 종이접기를 하듯 낑낑거리던 복실이었다. 흐물거리는 옷감을 어쩌지 못해 자신은 티셔츠를 못 개갰다며 짜증을 부리던 아이였다.
속옷 개는 법을 가르쳐 주며 엄마가 딸에게 빨래 개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어 감사하기도 했다. 나는 결혼 후 삼십이 넘어 옆집에 살던 친한 언니에게 속옷 개는 방법을 배웠다. 후드티 개는 법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때도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큰 아이들도 둘둘 말아 모자에 구겨 넣는 듯한 모양새지만 그럭저럭 갠다. 매일 빨래터에서는 실생활에서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실용 교육이 진행된다. 나는 그것이 좋다.
복실이는 자신의 옷을 빨래 더미에서 먼저 골라내고 소파 위로 올라갔다. 자신의 빨래를 먼저 개지 않고 수건을 갠다 야물딱진 손으로 수건은 얼마나 잘 개는지 모른다. 옷을 못 개던 시절 처음 빨래를 갤 때도 네모 반듯한 수건 정리는 꼬마들 몫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수건이 차곡차곡 쌓인다. 어느새 아이는 자신의 옷을 다 갰다. 서랍장 정리까지 마쳤다. 수건탑을 두 개나 쌓아 놓고 소파에 누웠다.
아기 복실이가 참 많이 컸다. 빨래 개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빨래 개는 속도로 아이의 자람을 판별하는 엄마가 좀 이상하기는 하다.
나는 딸을 참 잘 둔 것 같다. 빨래를 잘 개서 그런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