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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고 싶다

by 눈항아리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아침의 빨래를 갰다. 어깨가 잡아주는 긴 그네줄 두 개가 흔들흔들 저 혼자 움직이는 것 같다. 팔이 덜덜덜 떨린다. 저릿저릿하다.

삶은 늘 숙제를 내준다. 삶은 매일의 숙제를 준다. 이번에는 모과라는 숙제였다. 가을의 청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빨래는 작은 무더기 하나였다. 굳어있던 다리를 어젯밤 풀어주었고 아침의 빨래를 개며 팔을 풀어주었다. 팔은 복구가 안 되고 그냥 절절 끓기만 했다. 자전거 타기처럼 마구 휘두르면 움직여질까. 청이 끝나고 쉬면 팔이 괜찮아질 것을 안다. 청아 네가 야속하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야속한 것이다. 그러나 늘 평온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침의 소파가 오랜만에 비었다. 남편은 오랜만에 출근 준비를 먼저 마쳤다. 그리고 그의 지정좌석에 그림과 같이 앉아 있다. 모두 아침의 준비를 하는데 분주한 가운데 정물화 처럼 소파에 앉아있다.

“자기야 건조기에 다 돌아간 빨래 좀 꺼내줘요. ”

남편의 그림같은 시간을 방해하려던 건 절대 아니다. 건조기의 빨래를 꺼내야할 때가 되어서 그런 것이다. 남편은 빨래를 꺼냈고 곧 복이는 따끈한 빨래를 뒤적여 바지를 찾는다. 남편은 어수선한 소파에 다시 앉을 자리를 찾지 못했다. 지정좌석 앞에 섰다. 또 그림같이 서 있었다. 그러곤 빨래를 살짝 밀고 자신의 자리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았다. 외투까지 걸치고 난 후였다. 달복이가 가방을 메고 나갈 준비를 마친 후 핸드폰을 보고있던 어느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다시 달복이와 복실이가 옷을 찾으러 소파를 찾았다. 양말도 뒤적여 찾고 있다. 또 복동이가 소파를 찾았다. 소파는 참새 방앗간과 같다. 소파 주변에서 푸드덕 거리는 가족들. 아빠 옆에 느긋하게 앉은 또 한 명의 사람은 복실이다. 바지를 찾아들고 멍을 때리고 있다. 노래도 부른다. 소파에 앉아 바지에 다리를 끼우고 있다. 그러다 멍을 때린다.

나도 움직여야 하는데 소파 위의 그들처럼 느긋하기만 하다. 느리게 움직이고 싶은 날이다. 나도 정물화 처럼 소파에 앉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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